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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천 선생과 함께 남해군지에 기록된 하석우 선생은 하준천 선생의 조카이며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독립유공자 하준호(河準互) 선생의 아들이다. 하준호 선생과 하준천 선생은 형제간이다. 하석우 선생의 아들인 부산교육대학교 하윤수 총장은 부친 하석우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모아 지난 2007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지정을 신청했으나 증거부족을 이유로 지정되지 못했다. 당시 하석우 선생에 대한 재판 판결문이나 수감기록 같은 뚜렷한 독립운동 관련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하 총장은 부친 하석우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독립유공자 지정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석우 선생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국가보훈처 심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윤수 총장에 따르면 하석우 선생은 10세의 어린 몸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던 부친(하준호)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1919년 4월 6일 부친이 피검되는 것을 보고 비분강해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헌병의 총탄에 오른쪽 발목 복사뼈를 관통 당해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았다. 하윤수 총장은 “부친과 조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독립정신은 자주·애국정신이며 보물섬 남해가 살아가야할 정신적 가치이다. 이에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해 독립운동의 역사가 옳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남해군은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재조명 작업에 앞장서야하며 정부와 각 지자체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홀대받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준천·하석우 선생 이외에 최영기 선생은 지난 1915년 3월 만주 길림성에 한인 덕성학교를 창설하고 기미년 8월 북로군정서 상해임정 선전 연락책으로 활약했다. 군자금 모금을 위해 시베리아로 파견됐다가 1945년 연합군 스파이 및 한인독립단 대표라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대기하던 중 연합군 폭격으로 탈옥했다. 또한 김일문 선생은 1919년 9월 남해청년회를 조직해 독립정신을 고취했고 양명·고현·하일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불온사상자로 지목돼 면직됐다. 출처 : 남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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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회 종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