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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을 건널 때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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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67 호 1991년 11월24일 창간 2018년 4 월 29 일 § 교회목표 § 1. 천국시민양성 2. 만민에게 전도 3. 빈약한 자 구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복음 11장 40절) 발행처 :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1 길 7 전화:(02)558-1106 팩스 : (02) 558-2107 http://www.iseoulchurch.or.kr § 2018년 표어 §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 (요 3:16-17, 창 12:3. 마 9:35) †행 동 지 침† 1. 말씀과 기도로 하나 되는 거룩한 교회 2. 계대를 잇는 믿음의 가정들의 보편적 공동체 3.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도적 교회 Ⅱ. 요단강은 건널 때 요단강에서 집어온 돌들을 기념비로 세워야 한다(4:1 - 9)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불러 요 단 가운데 하나님의 궤 앞에 들어가서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고 했다. 그것을 강을 건넌 후 기념비로 세우라고 했다. 사실은 두 개의 기념비가 있는 것 같다 ① 요단 가운데서 취하여 길갈에 세운 돌비 가 있고(4:20) ② 제사장들이 밟고 있던 곳에 열두 돌을 세웠다(4:9) 중요한 것은 4장 9절이다. 요단강에 또 다 른 열두 돌을 세웠다기보다 제사장들이 섰던 그 요단강에 있었던 열두 돌을 세웠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 개의 기념비가 아닌 하나의 기념비이다. 그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 령은 한 기념비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순종했 을 뿐이다. 둘째, 요단강에서 가져온 돌을 자기들 장막 에 가져왔다(8절). 그것을 여호수아는 세웠다. 20절에서 다시 그 돌들을 길갈에 세웠다고 한 다. 물론 그 기념비가 하나이든 둘이든 결과는 같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기들 위해 하신 일을 잊지 않도록 하자는 데 목적이 있 다. 이 기념비는 1. 정복한 땅에 들어온 이들 즉 후손들이 이 를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길은 험하고 그 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것이다(수4:5 - 7) 그들은 그 돌들을 보고 하나님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보고 깨닫게 될 것이다. 2.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과 교훈을 잊기 쉽 기 때문에 기념비를 세우라 하셨다(수4:6 - 7, 21-23). 3. 지상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을 증거하므로 기념할 필요가 있다(24절). 하나님은 다른 신과 다르며 살아계시고 내 주하시고 전능자시다. Ⅲ. 요단강을 건널 때 길갈에서 백성의 성례식이 있어야 한다 할례와 유월절 행사를 다시 길갈에서 시행 케 되었다. 이것은 요단강을 건넌 후, 그러나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가나안 사람들과 아 모리 사람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 (수5:1). 인간적 생각으로 기습 작전을 펴서 단 칼에 멸망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할례 의 식과 유월절 의식을 행하도록 3일 간 지연시 켰다. 할례 의식을 전쟁을 앞둔 군인들에게 행한 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창세기 34 장에서 시몬과 레위의 누이 디나가 세겜 사람 들로부터 강간을 당한 사건이 나온다. 세겜 사 람들이 화친을 청해오자 야곱의 아들들은 그 들에게 할례받을 것을 요구하고 그들이 신음 하는 동안 진멸한 사건이 있었다. 이 같은 위 험한 지경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진행케 했다. 이때 적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침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것과 다르 다. 군사적 이득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더 중요시한 것이다. 할례는 언약의 상징이었 다. 세례가 하나님의 백성 된 표가 되듯 할례 는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으로 들어가는 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유월 절(수5:10 - 12)을 지켜 하나님을 기억하게 했 다.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을 기억하듯 길갈에 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구원 행동을 기억했 다. 우리 한국인은 너무 서둔다. ‘빨리 빨리’가 우리의 철학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 신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복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 요단강을 건널 때 Ⅱ (여호수아 3:1~ 5:12) 이종윤 원로목사 여호수아서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