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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웅 한규택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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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일을 불무황제로 삼고 선도교 교주 박명수를 도대장으로 삼아 400여명의 봉기군을 군직체제로 편성하여 일본경찰의 연락망을 차단하고자 전선을 절단하고 중문경찰관 주재소를 점거하여 소각하고 일경 3명을 포박하는 한편 그곳에 구금되었던 주민 13명을 구했다. 봉기군은 평소 수탈이 심했던 일본인 관리와 상인들도 처단하고 서귀포 경찰서로 향했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목포에서 지원군을 급파하여 봉기군을 무력 진압하였다. 공도 그때 체포되었고 1919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시다. 복역 후 공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내시다 1965년 8월 24일 별세하시다. 정부에서는 지사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니 공의 애국애정은 영세에 무궁히 빛내리, 이에 애국지사님의 명복을 빌며 삼가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