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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마을 오라동의 한 자연취락인 연미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문(文)씨에 의해 설촌되어 호수 103여 호의 마을이었으나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므로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네에 큰 연못을 팠다. 연미라는 마을 이름은 이 연못에서 연유한 것으로 물이 생수같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 후 이 연못은 매립되고, 1948년 4.3사건으로 인하여 마을은 완전히 소실되었었다. 피난갔던 사람들은 사건이 끝난 후 100여호 만이 돌아왔으나, 1973년 3월 5일 건설부고시 제88호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인구의 증가도 둔화되고 발전의 템포도 빠르지 못했으나 행정.의회.시민이 하나로 힘을 모아 끈질긴 해제노력을 쏟은 결과 1999년 7월 22일 전면해제 되었다. 이 마을의 유적으로는 조설대(朝雪臺)와 문연사(文淵社)가 있는데 한말인 1905년(광무 光武 9)이 이 마을에 살던 이응호(李膺鎬)가 중심이 되어 선비들의 모임인 '집의계(集義契)'를 결성하고 구국을 도모하던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