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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평 유치장에 35명 수감" - 미군 보고서 검거선풍으로 넘치는 유치장 1947년 4월 중순께 검속자가 500명으로 늘어났다. 수감자들은 유치장 안이 비좁아 앉지도 못한 채 서서 수감생활을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이에 대해 미군 감찰보고서는 "10×12피트(약 3.3평)의 한 방에 35명이 수감됐다"고 기록했다. 1년 동안 2,500명 검속 중문 발포사건(3월 17일), 종달리 6.6사건(6월 6일), 북촌 발포사건(8월 13일)과 1948년 2.7사건 등 민중과 경찰이 충돌하는 사건이 잦아지면서 검속자들은 계속 늘어났다. 3.1발포사건 이후 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검속자가 무려 2,500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