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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지사는 1901년 10월 22일 조천리에서 부 김희식 모 신천강씨의 5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나 19세때 신명사숙 교사로써 3.1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조국의 독립과 장래를 염원하시던 김시법 지사 외 12인 동지와 함께 1919년 3월 21일 본격적인 거사를 논의하고 태극기와 유인물을 제작하고 이튿날 아침 만세동산에 6백 여명을 동원하여 대한의 독립을 선언하고 13인 동지와 함께 가두행진에 들어갔다. 행진을 하는동안 수천명이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법 제주지소에서 지역 6개월을 선고 대구복심법원에서 결심판결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에도 동미회에 참여하여 숨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44년 2월 9일에 타계하시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을 위하여 1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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