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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어려서부터 총명다재함이 출중하여 서울 경성고보를 졸업하고 도일하여 명치대학에 재학 중 동지를 규합 항일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의 강압으로 학업을 중단 귀국 후 1928년 3월 서울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연맹에 가입하여 독립투쟁을 계속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30년에 귀향하여 1933년 2월과 3월에 항일운동 목적으로 향동회와 민풍진흥회 및 독서회를 조직하여 기성조직과 합세하여 문맹자와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민족주체의식을 심어주는 등 항일구국운동의 선봉자로 활약하다가 1934년 8월 일본경찰에 피체되어 1937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1년 6월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혹독한 옥고를 치루고 석방되었으나 일제의 무자비한 형문의 후유증으로 1950년 2월 7일 일제에 유한을 품고 타계하시니 향년 45세이시다. 1982년 8월 15일 조국광복 37주년을 맞아 공의 혁혁한 공훈을 찬양하여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으셨으니 공의 애국충정은 영세에 무궁히 빛나리! 이에 공의 명복을 빌며 삼가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