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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김수민(金秀民) 1857~1909 이명:수민(守民), 수민(洙敏) 김수민은 경기도 장단(長湍) 출신이다. 그는 농촌 출신으로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였기 때문에 관헌으로부터 동 학당(東學)으로도 지목을 받아왔다. 그는 힘이 남달리 세고 사격술이 뛰어나서 백발 백중(百發百中)하는 기술이 있었으며 화약과 탄약까지 스스로 제조할 줄 알아 그의 휘하에는 많은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봉건적 수탈에 항거하던 그가 일제의 농민 수탈 이 심화되어 가고 있어서 1907년 군대해산이 감행되자 일련의 농민운동을 조직화시 켜 항일운동으로 전환하여 발전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1907년 8월 25일(음)에 그가 살고 있던 장단군 북면 솔랑리(北面 率浪里)에서 의병모집을 착수하였다. 그는 군부 (軍部) 소관의 대포를 빼앗아 무장하고, 덕음동(德蔭洞)을 거점으로 군량을 적취(積 聚)하고 보부상(褓負商)을 모집하여 정보대를 편성시켜 원근의 적정(敵情)을 탐색하도 성 명김수민 한 자金秀敏 이 명金守民 성 별 남 생년월일 (1867, 공훈록에는 1857년생으로 기록;편자 주) 사망년월일1909-12-17 본 적경기도 고양 하도 소화전 주 소경기 장단 북 솔랑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62 훈 격독립장 공적개요 1. 1907년에 義兵을 일으켜 十三道 總都督이 되었고, 화약과 탄환까 지도 자기 스스로 제조하였음. 2. 義兵 2백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長湍 德蔭洞에서 군량을 모아 貧商 을 모집, 情報隊를 편성하여 敵情을 密探하고 적과의 對戰에 자주 得 勝하였음. 3. 그 후에 실패하자 京城에 潛入하여 車夫로 變裝하고 敵情을 살피 고 再起를 꾀하다가 倭賊에 逮捕되어 1909. 12. 17 사형 순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