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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인석(柳麟錫)의진으로 들어갔다. 이때 김경달은 최삼여(崔三汝)의 지평의진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행군하여서 양근(楊根) 땅 미원(迷源)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 세가 매우 불리한데다가 강력한 경군을 만나게 되자 군사들이 모두 흩어졌다. 이때 맹영재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은 의병장 최삼여를 죽여 의병진의 활약을 봉쇄 하고 경군의 활동을 도왔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김경달은 발길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서서 총을 쏘다가 경군에게 생포되었다. 경군은 그의 용감성에 감탄하여 "네가 만일 우리 편이 된다면 죽이지 않겠다."고 하 였다. 그러나 그는 큰 소리로 "원래 나라의 원수를 갚고, 형체를 보전하기 위하여 나섰던 것인데 불행하여 잡혔으 니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어찌 뜻을 고칠 수 있느냐." 하며 그대로 총살을 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대통령표창(大統領表彰)을 추서하였다. ※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음.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卷, 國家報勳處, 1986年, pp.496~497. 註ㆍ騎驢隨筆 43面 ㆍ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1卷 165・166・167・297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1卷 424面 (22). 김경선 1. 약전(略傳) 성 명 (異名) 활동 시기 출 신 거주지 생,몰 참고문헌및 전 거 활동내용 등 서훈및 포 상 * 김경선 金慶先 정미서울 1863 ~ 미상 〔공훈록, 양 평의병 운 동사 p.243〕 서울 정동 출신, 1907년 9월 경 문소모의진에 속하여 경 기 양근(楊根)과 포천 일대에 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피체되어 1908년 유형(流刑) 10년 애족장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