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page

498 미가 크다. 양근의 이승룡 의병장은 의병 三百여 명을 모집하여 서울진격을 위해 남한산성으 로 들어가 활동하였다. 양근의 후기 의병장 권득수ㆍ최대현ㆍ김춘수ㆍ이연년ㆍ최대평ㆍ조인 환 등은 용문산을 근거지로 양근ㆍ지평관아 등 관공서와 일본인 가옥 등을 습격하는 등 유격 전으로 전공을 세웠다. 전국의병은 연합의진 결성을 위해 이인영 대장 휘하에 양동으로 五千 여 명이 집결하였으며, 이를 해산시키려는 일본군과 삼산리 등에서 격전을 벌여 큰 타격을 입혔다. 이 결과로 다음 해 一萬여 十三도창의군이 양주에서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말 전후기의병의 요람인 양근과 지평이 통합되어 양평군이 되었으니, ‘양평의병’으 로 정립함이 마땅하다. 혼란한 세태에서 문헌이 잔결되어 양평의병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 는 二千여 분을 모두 찾아 기록하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七十주년 및 을미의병창의 一二○주년에 즈음하여 양평의병의 대강을 요약하고 밝혀낸 의병 二百여 분의 성명을 돌에 새겨 세우고 추모하며 숭고한 창의호국정신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자 한다. 단기 四三四八년, 서기 二○一五년 乙未 十一월 二十八일 양평의병기념사업회 회장 신교중 姜基東 高牙將 高有勳 高正卜 具萬書 具然英 權得洙 權洛鍾 權善卿 權應靖 權承默 權重善 權仲植 權化京 金巨福 金慶達 金慶先 金奎明 金奎植 金吉同 金乭伊 金東贊 金萬洙 金伯善 金鳳基 金商基 金錫夏 金成寬 金成善 金聖完 金聖化 金水乭 金壽萬 金秀敏 金永祿 金龍俊 金允求 金應西 金仁凡 金寅載 金在觀 金正純 金振根 金振基 金眞德 金溱默 金振文 金振淳 金振勝 金振靈 金振縣 金昌植 金春洙 金致三 金泰成 金玄奎 金鴻熱 金壎 南公弼 羅相軒 羅應完 柳恪 柳鳳錫 柳重岳 孟君集 孟哲鎬 文宜瑛 閔肯鎬 閔基熙 閔東植 閔義植 朴光天 朴君善 朴萬彬 朴允弼 朴正遠 朴廷和 朴鍾謹 박종수 朴齊三 朴春植 朴致福 方觀一 白永基 卞道石 徐順弼 徐石華 孫德化 孫聖泰 孫龍文 申右均 辛元英 申芝秀 申昌鉉 申泰亨 安基榮 安石鉉 安承卨 安承禹 安載恒 安鍾璿 安鍾曄 安鍾應 安興寬 余龍瑞 吳莊問 禹相玉 劉相德 尹敎昇 尹相龍 尹星七 尹聖鎬 尹膺善 尹鍾榮 尹俊榮 尹泰勳 李康秊 李觀九 李寬永 李球采 李根元 李根豊 李基準 李能瑞 李斗順 李晩應 李勉洙 李文鎬 李敏五 李範九 李範疇 李秉民 李秉壽 李秉直 李福景 李福淵 李福永 李鳳來 李鳳夏 李鵬九 李錫永 李錫夏 李聖瑞 李成元 李聖載 李昭應 李秀健 李承龍 李延秊 李容彩 李雲星 李殷瓚 李麟榮 李在福 李種德 李俊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