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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마. 을미의병봉기 기념탑 게시문 바. 양평의병기념비문 1896년 1월 이춘영ㆍ안승우ㆍ김백선 등이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공포하자 한국민의 분노와 반발은 최고조에 이 르렀다. 이에 경기도 지평출신의 이춘영과 강원도 원주 출신의 김사정은 모임을 갖고 의병결성을 계획하였다. 이 과정에서 안승우와 포군 지도자 김백선이 합류하여 1896년 1월 12일 안창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들은 원주관아를 점령하고 제천으로 내려가 이필희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여 기 세를 올렸으나, 단양 장회협전투 이후 전열이 와해되었다. 이에 류인석을 의병장에 추 대하고 진영을 재정비하여 호좌의진으로 발전하였다. 2002년 1월 원주시에서 ‘을미의병봉기기념탑’을 세워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양평은 대한민국 국토의 중심지로 산자수명하며 도학과 의리를 숭상하는 기풍이 있는 의향 이요 한국 근대 항일민족운동의 발원지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一八七六년 강화도조약 이후 내정을 간섭하더니, 마침내 一八九五년 을미사변이란 국제적 만행을 저지르고 단발령을 강제 시행하는 등 병탄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국수보복의 기치아래 전국에서 의병 이 봉기했으니 이것이 을미의병ㆍ전기의병이다. 一九○四년 한일의정서ㆍ한일협약의 체결, 一九○五년 을사늑약 등으로 을사의병ㆍ중기의병이 일어났고,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등으로 一九○七년 국권회복을 목표로 정미의병ㆍ후기의병이 일어났다. 전기의병의 주 도적 역할은 화서학파가 근간을 이루고 그 창의호국 이념은 양근 벽계의 화서 이항로 선생이 주창한 위정척사였다. 전기의병 중 전국에서 가장 유력했던 의병진은 류인석 대장이 이끈 호 좌의진이다. 이는 이춘영ㆍ안승우ㆍ김백선 의병장 등이 포군 四百여 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창의한 지평의병이 주축이 되었다. 지평의진은 원주ㆍ제천 등을 점령하고 단양 장회협 에서 승리, 충주성 점령, 수안보·가흥 등지에서 항전하였다. 전기의병으로 일제는 우리나라 침략을 일시 멈추기에 이르렀으며, 호좌의진은 재기를 위해 만주로 가다 파저강변에서 무장 해제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 인적 기반과 정신적 이념은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그러 므로 지평은 전기의병의 발상지로 근대 한국독립운동 五十년 역사의 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