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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형을 받고 순국하였으며, 고정복⦁권낙종⦁이창준⦁이재복⦁이춘명⦁이천보⦁최우석⦁한 인수 등은 옥고를 치렀다. 이상의 검토를 통하여, 이춘영과 안승우⦁김백선⦁이승룡⦁이연년⦁권득수⦁조인환 등 의병장들의 활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양평지역이 경기도 의병부대의 근거지 또는 집결장이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에 따라서 일본군과의 전투가 자주 일어났으며, 그 중에 대표적인 전투가 권득수⦁조인환 부대의 용문산 전투와 서울탈환작전의 준비를 수행 중이던 이인영의 연합의병과 일본군과 의 지평의 삼산리 전투였다. 의병의 활동으로 인해 양평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음도 확인되었다. 의병에 대한 가혹한 학살이 가해졌으며 민가가 수백 호 불태워졌다. 양평의 대표적 사찰인 용문사와 상원사, 사나사가 소각되었음을 일본군의 보고서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안종응⦁안승우⦁안기영 3대 의병, 이승룡⦁이연년, 이성서⦁이창준, 손덕화⦁손용문 부자의병 들의 행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불굴의 의병 정신은 대를 이어 계승되었음도 볼 수 있었다. 1907년 가을 양근을 방문한 매켄지에게 어느 의병장이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것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라고 말 하였듯이 양평의 의병들은 대를 이어 혹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위한 투쟁이 선봉에 나섰다. 이들의 행적은 우리 역사 속에 길이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