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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 21) 李春明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양평군 용암리에서 거주하였다. 판결문에 의하면, 1910년 현재 33세로 직업은 ‘농업 겸 뱃군’으로 되어 있다. 1907년 9월경(음)부터 김춘수 의병진에 가 입하여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양근분견소에 자수하였다가, 다시 의병 활동을 전개하 였다. 1908년 12월 14일(음) 高正卜⦁辛元英⦁李千甫 등과 함께 남시면에서 군수품을 탈 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춘명은 이 일로 체포되어 1910년 4월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82) 22) 鄭東燮 양평 출신으로 1907년 8월부터 1909년경까지 지평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83) 23) 鄭永雲 (1879~1910) 경기도 지평에서 태어나 양근군 남시면 상백석동에 거주하였다. 임행숙 의진에 가담하여 동료의병 100여 명과 함께 각지를 다니면서 활약하던 중 1907년 11월 1일에 경기도 여 주군 홍곡면 충신동 산 속에서 여주경찰서 소속 순사 5명을 만나 그 중 渡邊卷太郞⦁福 島榮太郞⦁足田章⦁金漢永 등 4명을 사살한 뒤 의병활동을 계속 하다가 일경에게 피체되 었다. 1910년 2월 1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3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84) 1991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경기관찰사의 의병보고서(1908년 3월 3일)(『양평군지』892~893쪽). 82)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53쪽. 83) 『독립운동사』1, 532쪽. 84)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50⦁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