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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공훈록> 권승묵(權承默) (1872)~미상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강기동(姜基東)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 북부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강기동은 서울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고안(高安) 헌병분견소의 헌병보조원으로 있 다가 의병이 되기로 결심하고, 1909년 1월 15일 헌병분견소 내에 갇혀 있던 길인식 (吉仁植) 등 2명의 의병과 함께 장총 2정, 탄환 300발, 권총 1정, 총검 5정을 탈취하 여 경기 동북부 지역의 최대 연합의병부대인 이은찬(李殷瓚) 의진에 투신하였다. 이은찬 의진에서 강기동은 헌병보조원 시절에 입수한 정보를 활용하여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같은 해 3월 31일 이은찬 의병장이 일 경에 피체된 이후에는 그를 대신하여 의진을 이끌고,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하여 전 투역량을 강화하면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투쟁하였다. 그리하여 강기동 의진은 경기 양주・양평・포천・연천과 강원 가평 등지의 산간지대를 무대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 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권승묵은 이같은 강기동 의진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1909년 12월 강원호(姜元鎬) 등과 같이 물미장(杖)을 휴대하고 경기 적성(積城)군 남면에서 군수품을 수합하는 활 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10년 7월 1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3년을 받 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2卷, 國家報勳處, 1996年, p.120. 註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162面 3. 판결문 등 : 찾지 못함(공훈록에는 ‘1910년 7월 1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판결문은 찾지 못하였음;편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