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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는데, 대장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하였다. 지금 적진이 앞뒤로 다 있으니 후퇴한들 지킬 수 없고 전진하자니 힘을 쓸 수 밖에 없으니, 지금의 계책으로는 먼저 수안보의 적 병참을 무찌르고, 한 부대의 군사로 鳥嶺의 험지를 웅거해 지키게 하며, 電線을 모두 끊어버리면, 천리 간에 걸쳐 있는 적진이 서로 머리와 꼬리가 끊어져 앞에서는 뒤를 구원하지 못하고, 뒤 에서는 앞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니, 적의 세력이 분단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남의 세력을 끌고, 호남의 豊盛한 것을 당기어서 서로 羽翼을 삼으며, 사면으로 다가든 다면 서울의 적을 며칠이 안 가서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37) 그러나 계획은 좋으나 위태로움이 많으므로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는데 2월 23일 일본 군수비대 수백 명이 達川까지 들어왔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이때 이춘영은 대장에게 고하 기를 각 영의 잔졸이 매일 출전하여 많이 피로한데, 저만은 중군으로 한 번도 출전하 지 않아서 민망하였습니다. 청컨대 한 부대 병사로써 경각의 사이에 무력을 빛내 어 한편으로는 적의 세력을 끊어 우리 계획을 달성하고 한편으로는 여러 군사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겠습니다. 38) 하니 대장이 허락하였다. 이춘영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워 크게 이겼다. 적병의 시체만도 50~60이 되었다. 적이 멀리 달아났으므로 일단 군사들을 집합시켰다.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이춘영은 성 밖에 유진하고 대장소에 승전한 기세를 이용하여 수안보를 진격하겠다고 청하니, 대장소 에서 허락하였다. 이에 의병들을 지휘하여 바로 수안보의 적병참을 진격하였다. 조령 밑 에 있는 수안보의 일본군병참에 대하여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였기 때문에 쉽사리 포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병진은 주위의 고지를 점령하고 저항하는 적병들을 사 살하면서 사면으로 압축하여 들어갔다. 용감한 의병들은 적병을 보이는 대로 무찌르며 육 박하여 들어가니 적진에서는 당황하여 퇴각의 길을 찾고 있었다. 이때 이춘영이 큰소리로 “적이 지금 달아나려 하니 군사들은 급히 쳐라”고 호령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적들은 이 춘영을 향하여 집중 공격하였다. 그러나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육혈포를 쏘았으나, 총알 이 나오지 않았다. 이춘영은 뒤에 있던 洪選杓에게 총을 주며 “이것이 무슨 까닭인지 좀 37) 「육의사열전」 『독립운동사자료집』1, 185쪽. 38) 「육의사열전」 위 책, 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