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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며 본관은 밀양이다. 제천의병에 참전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8) 1910년 한일합방 직후인 10월 19일 그에게 소위 耆老牒과 은사금을 수령하라는 통지가 왔다. 그는 이를 거부한 일로 지제면의 헌병대에 구치되었다. 일본인 헌병소장의 회유와 협박에 그는 “임 금을 폐한 임금과 인민을 병탐한 나라가 주는 돈을 결코 받을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하 고 옥고를 치렀다. 19) 8) 지평의 3의병 : 孫德化⦁金性化(聖化)⦁金正淳(正純) 이들은 모두 지평출신으로 이춘영⦁김백선과 함께 의병에 참전하여 제천 등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충주성 전투에 패한 의병장 류인석은 본진을 제천으로 옮기고 가흥의 일본군 병참기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하였다. 이들 3인은 김백선이 이끄는 可興전투에 서 밤낮 없이 공방전을 수행하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중군장 안승우는 3월 14일(음) 제천 의 남쪽 남당촌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이들의 대한 제사를 지냈는데, 다음과 같은 제문을 올려 이들의 혼을 위로하였다. 아! 슬프도다. 나라 운수가 불행하여 시국이 어렵게 되었고, 적신이 권력을 잡으 매 섬오랑캐가 흉악함을 방자히 하는도다. 독한 칼날이 국모에게 미치고 머리 깎 는 칼이 면류관에 범하였으니 만고에 망극한 변이 이 보다 심한 것은 없었다. 이 에 義旗를 들어 요망한 것들을 숙청하려고 맹서하고 그대들 세 사람이 분연히 일 어나 몸을 돌보지 않고 부지런하고 수고롭게 백번 싸워 마침내 가흥싸움에 목숨 을 잃었구나. 아! 사람이 세상에 나서 한번 죽음은 뉘 없으리오마는 죽을 곳을 잘 얻는 것이 귀중함이 되나니, 그대들 정경이 가련한 것은 눈앞의 일이요, 절의의 가상한 것은 백세의 영화로다.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삼가 박주 한잔으로써 하 늘가를 바라보며 곡하노니, 바라건대 충혼은 역력히 내려와 산 듯이 내 좌우를 도 울지어다. 20) 이들 3인 중에 손덕화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김성화는 2001년에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18) 이소응, 『소의신편』 『금계집』 참조. 19) 朴廷和,『砥邑日記』(장삼현,『양평의병운동사』). 20) 『독립운동사자료집』1, 117쪽. 박정수, 「하사안공실기」『독립운동사자료집』1, 336~337쪽. ───,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 4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