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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깊은 고찰과 수백 호에 달하는 민가를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무수한 양민을 학살 하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그동안 양평의병에 대하여 경기지역 의병의 일부로 서술되는 등 학계의 관심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하여 양평지역인들은 향토애를 바탕으로 하여 『양평의병운동사』 또는 『양평의향지』 등의 연구물을 간행하여 양평의병에 대한 연구를 축적하여 왔다. 2) 이 글은 양평 출신의 의병장을 발굴하고 그들의 행적을 고증함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우선 「폭도에 관한 편책」과 「조선폭도토벌지」, 「폭도사편집자료」 등의 일본 측이 나 관찰사 등의 보고서에 나타난 양평의병 관련 자료를 검토하였다. 여기에 「종의록」,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 「의암류선생서행대략」, 「육의사열전」, 「의병사시말」과 같은 의병 측의 자료들을 비교 검토하였다. 양평지역에서 많은 의병 활동이 있었지만, 양평 출신 의 병들의 활동만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들이 타 지역에서 활동했더라도 그 사항을 포함시켰 으며 양평지역에서 활동했더라도 타 지역 출신의 의병은 제외시켰다. 그러나 자료의 부족 으로 양평 의병 전체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음을 밝힌다. 2. 양평지역의 인문지리적 배경 楊平郡은 조선시대 楊根郡과 砥平縣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두 지역은 여흥도호부에 속 했으나, 양근군은 종4품의 군수가 배치되었고, 지평에는 종6품의 현감이 배치되었다. 임 진왜란 이후 양근 군수는 여주진관의 병마동지절제사를 겸직하였고, 지평현감은 여주진관 의 병마절제도위를 겸직하였다. 양근군은 정조 즉위년에 역적(영조 말엽의 시⦁벽파 싸움 에서 죽음을 당한 李德師를 말함)이 태어난 읍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는 등 몇 차례 강 등과 복구가 있었으며, 지평현 역시 숙종 11년(1685) 강상 죄인이 있어 현을 없애고 양근 군에 편입시킨 일도 있었다. 그러나 1895년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두 지역은 다 같이 춘천부에 속하는 郡이 되었다. 그러다가 융희2년(1908년) 9월 14일 칙령 제69호 의해 두 군을 합병하여 양평군이 되었다. 양평군은 경기도 동부에 위치하여 서울시와는 40km의 거리이며, 북쪽은 가평군, 서쪽은 강원도 원주, 남쪽은 여주군과 닿아 있다. 양평은 군의 중앙부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용 문산을 중심으로 한 지괴가 군 전역을 지배하고 있어 대체로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금 강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형성된 소양강과 홍천강이 합쳐져서 양평으로 들어온 북한강이 2) 張三鉉, 『楊平義兵運動史』, 楊平文化院,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