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page

45 <공훈록> 권득수(權得洙) 1873. 10. 4~1907. 9. 2 이명:格・成根 경기도 연천(漣川)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기울어져 가는 국운 을 일으켜 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약관의 젊은 나이에 경기도 지평(砥平), 이천(利川) 등지 에서 의병 6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양주(楊州) 회촌(檜村)에 거주하고 있는 신재만(申載萬)에게 국가를 위하여 창의할 것을 권유하고 자금 5만 원과 양총(洋銃) 및 조총(鳥銃) 등 13정을 모집하였다. 1907년 양주(楊州)・양근(楊根)・이천(利川)・지평(砥平) 등지에서 의병 200여 명을 모집 하여 활동하다가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 하였다. 註ㆍ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533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3卷 507面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卷 12・13・69面 4-4-1. 독립운동사자료집 3 : 의병항쟁사자료집/폭도사편집자료/2. 다시 되풀이한 수 괴자(首魁者)의 성명(姓名)·경력 및 폭거(暴擧) 중의 행동 507쪽 권득수(權得洙) 30세, 양근군 읍내면(邑內面) (1) 경력 기타 소(牛) 장사를 하던 자인 바 한때 부하 2백여 명을 인솔하고 지평(砥平)·양근(楊根)·이천 (利川)·양주(楊州)의 각지를 배회 출몰하여 현재 소재 불명인 바 일설에는 부하에게 살해 되었다고도 전한다.(이하 생략) 4-4-2. ‘2007년 10월의 독립운동가’ 기사[생략(이책 상권 416쪽 ‘자료10’과 같음)] 공적개요 1907.9月 義兵 200餘名을 糾合하여 義兵將이 되어 楊根, 砥平, 利川, 楊 州등지에서 活動하고 麾下60餘義兵을 直接 引率하여 楊州郡에서 5萬兩의 軍資金과 銃 13挺을 募集하는 등 相當한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