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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3. 양평지역의 후기의병(1905~1910) 양평지역의 후기의병(1905~1910) 洪 英 基 1) 1. 머리말 2. 양평지역 후기의병의 발단(1905~1907.7) 3. 양평지역 후기의병의 발전(1907.8~1908) 4. 양평지역 후기의병의 쇠퇴와 새로운 모색 1. 머리말 화서학파의 주도로 봉기한 양평의병은 양평을 비롯하여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중심으로 돋보이는 활약을 전개했다. 華西 李恒老의 출생지인 壁溪가 양평에 소재한 때문에 화서 학파의 문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의병봉기에 나섰다. 양평출신의 이춘영⦁안승우를 비롯 한 화서학파 문인들과 김백선을 중심으로 한 포군세력 등이 힘을 합하여 전기의병을 주도 했던 것이다. 전기의병의 義擧가 양평지역을 휩쓸었지만,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제의 마수에서 벗어나 지 못했다. 1900년대에 이르러 일제는 노골적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쳤다. 결국,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됨으로써 외교권을 상실하게 되자, 우국지사들은 나라를 잃 은 것으로 간주하며 통탄해 마지않았다. 더욱이 1907년에 들어와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 권을 마음대로 유린하였다. 헤이그특사를 빌미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7.19)시켰으며, ‘한일신협약(7.24)’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제멋대로 간섭하였다. 더욱이 며칠 후 1) 순천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