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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자는 필자가 입력한 것임) 라하고 軍案을 빼앗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軍士는 있으나 主人 없는 것이 恨이로다” 라며 경내를 돌아다녔다. 안종응은 김백선의 이러한 행적을 알고 있었으며 이춘영이 오자 이를 전해 주고 급히 김백선을 만나게 한 것이다. 이춘영이 김백선을 찾아간 것은 그날 밤이었다. 둘은 의기가 투합되어 거의에 관한 협의를 진행하였다. 김백선이 군사를 책임 지고 이춘영이 재물을 책임지기로 하고 26일에 안창에서 거의하기로 약속하였다. 김백선 은 가만히 포군들에게 통지하여 안창에 집결하도록 하였다. 안창에 집결토록 한 것은 지 평의 관아로부터 방해를 받을 것을 염려해서였다고 한다. 19) 이춘영은 집에 돌아와 사당에 들어가 조상에 하직하고 모친과 영결하였다. 그리고 아내 에게 다음과 같이 이별을 고하였다. 나는 지금 사람이 되느냐, 짐승이 되느냐 하는 판가름을 당하여 바른 길을 찾아 죽고자 하는 것을 실로 마음을 달게 여기는 바다. 다만 차마 못할 일은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는 데 끝내 봉양을 못해 드리는 그것이니 원컨대 그대는 아무쪼록 내 뜻을 받아서 내가 살아 있지 않다 생각하지 말고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나의 지하의 넋을 위안해 달라. 20) 이춘영은 한편으로는 가사를 조카에게 맡기고, 한편으로는 장담에 가 있는 안승우에게 글을 보내어 거병의 일을 알렸다. 안종응 역시 아들에게 기별을 보내 지평으로 불러 올렸 다. 21) 2) 조직과 활동 이춘영은 김백선과 약속한 1896년 1월 10일(음, 11월 26) 원주 안창의 만수암으로 갔 다. 만수암에서는 이춘영의 장인인 都事 金憲秀가 음식과 軍需에 쓸 재물을 준비하고 군 사에게 먹이려고 소를 잡고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김백선도 포군을 인솔하고 왔다. 이춘영이 장대를 세우고 단에 올라 호령하니 의병이 박수로 화답했다. 이때의 일을 『의병 리고 집을 돌아와 칼을 갈며 자결하려고까지 생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육의사열전보다 『의병사시말』 의 내용 이 일자별로 기록되어 있고 내용도 사실적이어 이를 이용하였다. 19) 이정규, 「종의록」『독립운동사자료집』1, 18쪽. 20) 李正奎, 「六義士列傳, 李塊隱傳」, 앞의 책 181쪽. 21) 『의병사시말』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