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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되었던 것이다. 이항로는 30대가 되어 인근에 학문이 널리 알려졌다. 류중교⦁양헌수⦁최익현⦁박문일이 입문하였으며, 홍직필에게서 배우던 김평묵도 찾아왔다. 류인석⦁류홍석⦁홍재학 등도 수 학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이항로의 문하에서 특출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항로의 문인으로 양평군 출신으로는 이근원을 비롯하여 권경⦁권도제⦁권석규⦁박갑금 ⦁박능이⦁박봉구⦁박성이⦁박수길⦁박수현⦁박시보⦁박영록⦁박제봉⦁박태현⦁신석수⦁ 신옥손⦁신태언⦁신학인⦁양도환⦁양무환⦁양문환⦁양주석⦁양필환⦁류기선⦁류병로⦁류 석구⦁이전양⦁이종순⦁이종억⦁이준⦁장술후⦁장술흠⦁장학수⦁장회진⦁홍승오⦁홍쾌남 등이 있으며, 춘천출신인 류중교의 문인 중에 양평 출신으로는 박학래⦁안종응⦁안승욱⦁ 안승필⦁안수⦁안형직⦁양재학⦁양주갑⦁양주목⦁이병록⦁이환⦁조성호 등이 확인된다. 또한 춘천출신인 류인석의 문인 중에 양평 출신으로는 의병장 이춘영과 신태형이 있다. 한편 이근원의 문인으로는 안승우⦁인승설⦁박중빈⦁박정화⦁이병대⦁민병승⦁이준학이 양평 출신이며, 이 밖의 문인으로는 이관하⦁안규선⦁박영소 등이 확인된다. 6) 이들은 주로 고령박씨⦁평산신씨⦁순흥안씨⦁남원양씨⦁벽진이씨⦁결성장씨 등 같은 집 안 인물들이 집중되어 있는 특징을 갖는다. 지역 역시 서종면 정배리와 노문리 벽계, 지 평의 양동면 출신 인물이 다수를 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이항로의 문인들이 講修契를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있는데, 최익현과 류인석 의 서문이 있는 이 자료의 「절목」에 의하면 1903년에 조직된 이 강수계의 목적은 이항로 의 문집과 『화동사합편강목』을 重刊하고, 남의 손에 넘어간 이항로의 구택을 다시 사들이 고자 함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 사무소는 홍천의 哲亭에 있는 본댁과 양근의 鼎山에 있는 墳庵에 두었다. 그리고 모임은 1년에 춘추 2회씩 하는데, 양근은 3월 상순과 10월 상순에, 홍천은 3월 중순과 10월 중순에 열기로 하였다. 모임에서는 講筵과 향음례를 거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7) 이들 화서학파 문인들 중에 이춘영과 안승우를 비롯하여 일부의 인물들이 지평의병을 주 도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존화양이론을 철저히 전수받은 화서학파의 문인들로 양평지역에서의 항일민족운동의 사회적 또는 이념적인 배경을 형성하게 한 기반이 되었다 할 수 있다. 6) 장삼현, 『벽계연원록』, 양평문화원, 1999. 이들의 인적사항은 <부록1> 참조. 7) 장삼현,「講修契員及獻誠錄」『벽계연원록』, 414~432쪽. <부록 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