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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개요> <공훈록> 최유복(崔有福) (1882)~미상 서울 사람이다. 조인환(曺仁煥)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양주(楊州)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 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 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식민 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 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최유복은 이 같은 시기에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음력 7월 10일 조인환 의진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조인환 의병장은 일본군을 몰아내고 자 의병을 규합하여 경기도 양평(楊平)의 군아(郡衙)・세무서・우편물취급소 등을 파괴, 방화하였고, 파주(坡州)・양주(楊州) 지방에서 의병들을 이끌고 임진강을 근거지로 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군을 습격하는 등의 활약상을 보이던 의병장이었다. 최유복은 이 같은 조인환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십수 명의 동지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1907년 음력 7월 20일 경기도 양주군 수유리(水踰里)에 들어가 동장으로부터 양총 2정을 징발하 성 명최유복한 자崔有福 이 명없음 성 별 남 생년월일 (1881, 공훈록의 생년은 1882년;편자 주) 사망년월일미상 본 적서울 東大門 廟주 소서울 東部 仁昌 龍頭 16-1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95 훈 격애족장 공적개요 1907年 陰曆 7月 京畿 楊州郡 일대에서 曹仁煥 義兵陣에 가담하여 무기 를 조달하는 등 활동하다가 被逮되어 懲役 7年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