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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정 영 운(鄭永雲) (1879~1910) 경기도 양평(楊平) 사람이다. 임행숙(任行淑) 의진에 가담하여 동료의병 100여 명과 함께 각지를 다니면서 활약하던 중 1907년 11월 1일에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흥곡면(興谷面) 충신동(忠信洞) 산속에서 여주경찰서 소속 순사 5명을 만나 그 중 권태랑・복도영태랑(福島營太郞)・족전장(足田 章)・김한영(金漢永) 등 4명을 사살한 뒤 의병활동을 계속하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그 후 1910년 2월 1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아 공소하 였으나 1910년 3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9卷, 國家報勳處, 1991年, p.724. 註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150・151・169面 성 명정영운한 자鄭永雲 이 명없음 성 별남 생년월일 (1878, 공훈록의 생년은 1879년;편자 주) 사망년월일(1910-03) 본 적경기도 양평 砥平주 소京畿 楊平 南始 上白石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91 훈 격애국장 공적개요 任行淑 義陣에 加擔하여 同僚義兵 1百餘名과 함께 各地에서 活動中 1907. 11. 1 驪州警察署所屬巡査 5名을 산속에서 만나 4名(日人巡査 3 名 韓人巡査 1名)을 射殺하는 등 義兵鬪爭活動을 계속하던 중 日警에게 被逮되어 1910. 2. 6 京城法院에서 絞首刑으로 殉國한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