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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공훈록> 임을선(林乙善) 미상~1896 류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충북, 강원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894년 일제는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을 노 골화시켜 갔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개입으로 말미암아 국제정세가 변화 하면서 친일세력이 약화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자국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급 기야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어서 일제는 친일정권을 사주 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에 양반 유생뿐만 아니라 민중 들도 분연히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였다. 임을선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일제의 침략을 분개하던 중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류인석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는 비록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하였지만, 의병장들이 항상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조역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즉, 그는 당시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일어난 안승우(安承禹) 부대에 참여하여 우익장 (右翼將) 윤성호(尹聖鎬)의 시종이 되어 그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였고 원주에서 그를 도와 군사를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 후 류인석 의병장은 여러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서북 방면으로 북상하여 군사들을 모집하면서 장기항전을 하기로 하고 서북행길에 올랐 다. 그리하여 1896년 6월 8일에는 음성 방면을 지나 괴산 및 청주・공주 방면으로 이동 하며 적을 격파하기도 하였으며, 6월 10일에는 강원도 원주를 거쳐 영월・평창・정선・강 릉을 지나 7월 11일에는 대화(大和)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름철에 장맛비는 계속 내려서 길은 미끄럽고 군사들의 식량은 모자라는데, 몰려드는 적군은 사면에서 기승을 부리니 서 성 명임을선한 자林乙善 이 명없음 성 별남 생년월일미상사망년월일1896-06-04 본 적미상주 소미상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95 훈 격애국장 공적개요 1896. 6. 4(음) 柳麟錫義陣의 右翼이었던 尹聖鎬와 함께 偵探中 砥平 上東에서 被逮되어 殉國한 사실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