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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17・161・171・182・331・349・412・ 414・418・427・430・451・455・457・539面 4-4. 신문보도 등 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원문은 생략하고 국역본을 수록함. 을미의병 거의 초기에 이필희는 의병전쟁 시기에 발포된 여러 격문 가운데 백미로 평가되는 「격고팔도열읍(檄 告八道列邑)」을 발포하여 전 국민에게 의병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호소하였다. 이 격문 은 얼마 뒤에 류인석이 의병대장에 등단한 후 전국적으로 포고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게 되었다 ; 편자 주) 격문(檄文)을 띄워 팔도 열읍에 고함 아! 우리 팔도 동포들은, 차마 망해 가는 이 나라를 내버려 두시렵니까. 제 할아비 제 아비가 5백 년 유민(遺民)이 아닌 바 아니거늘, 내 나라 내 집을 위해 어찌 한두 사람의 의사(義士)도 없단 말입니까. 참혹하고도 슬프구려, 운이라 할까 명이라 할까. 거룩한 우리 조정은 개국한 처음부터 선왕(先王)의 법을 준수하려, 온 천하가 다 소중 화(小中華)라 일컫거니와, 민속은 당우(唐虞) 삼대(三代)에 견줄 만하고, 유술(儒術)은 정 자(程子)·주자(朱子) 여러 어진 이를 스승 삼았기로, 비록 무식한 사람이라도 모두 예의 를 숭상하여, 임금이 위급하게 되면, 반드시 쫓아가 구원할 생각을 가졌던 것이외다. 그 래서 옛날 임진왜란에는 창의(倡義)한 선비가 한이 없었고, 병자호란에는 순절(殉節)한 신하가 많았으며, 저 중국은 왜놈의 천지가 되었지만, 우리나라만은 깨끗하였으니, 바다 밖의 조그마한 지역이지만 족히 싸인 음(陰) 속에 한 가닥 양(陽)의 구실을 하였던 것이 외다. 아! 원통하외다. 뉘 알았으랴, 외국과 통상(通商)한다는 꾀가, 실로 망국의 근본이 될 것을. 문을 열고 도적을 받아들이어 소위 세신(世臣)이란 것들은 달갑게 왜적의 앞잡이 〔虎倀〕노릇을 하는데,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려는 이 선비들은 남의 노예가 되는 수 치를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송(宋)나라를 어리석게 만드는 금(金)나라의 꾀는 너무도 망측하고 노(魯)나라에 남아 있는 주(周)나라의 예는 보전하기 어렵게 되니, 이 때문에 미약한 시골 백성의 신 분으로 한갓 나라를 근심하는 한탄만 간절할 따름이었는데, 마침내 갑오년 6월 20일 밤 에 이르러, 우리 조선 삼천리 강토가 없어진 셈입니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은 일발(一髮) 의 위기에 부닥쳤으나 송(宋)나라 이약수(李若水)가 흠종(欽宗)을 껴안은 일을 실행한 자 가 누구며, 목사(牧使)·현감(縣監)이 모두 육식(肉食)만 하는 자들이라 당(唐)나라 안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