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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공훈록> 이춘영(李春永) 1869~1896. 2 호:괴은(槐隱) 자:우삼(友三) 이춘영은 경기도 양평(楊平) 출신이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며 나아가서 일제의 내정간섭을 저지하기 위하여 의병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친우인 안승 우(安承禹)와 함께 원주(原州) 안창리(安倉里)에서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이때 지평감역 (砥平監役)인 맹영재(孟英在)는 동비(東匪)를 막기 위하여 총을 많이 준비하였다가 동학농 민군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지평 현감(縣監)으로 출신하게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맹영재 는 이미 거의할 뜻이 없었다. 이에 이춘영은 맹영재의 부하 중에 김백선(金伯善)이 전 술・전략에 능숙할 뿐 아니라 대의를 위하여 거의할 뜻이 있음을 알고 입진시켰다. 백선 은 맹영재가 영솔하고 있던 부하 4백여 명을 영입하여 의병대를 조직하고 원주를 점령하 여 수일간 주둔하였다가 제천(堤川)으로 향하였다. 이곳에서 제천군수와 단양군수, 청풍군 수 그리고 충주관찰사 등을 생포하였다. 이때 단양군수의 아들이 일병 수백 명을 청하여 공격하여 왔다. 이들을 맞아 단양 장회(長匯)에서 접전하여 적을 크게 무찌르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지평현감 맹영재는 부하를 빼앗긴 것을 한하여 관찰부와 경사(京司)에 '이춘영・안 승우 대역부도(大逆不道)'라는 10자로 보고하고 네거리에 방문을 써서 붙인 다음 그의 부 하인 이민옥(李敏玉)을 비밀리에 의진에 파견하여 겉으로는 의병을 가장하고 내심으로 흉 계를 품어 장차 의진을 무산시키고자 하였다. 이민옥이라는 자는 이춘영의 친척인 동시에 안승우의 외척이었으므로 그를 믿고 의진 내에 거두어 들였다. 그러나 그 후 이춘영과 서 상열(徐相烈)이 의병을 소모하고자 영남으로 향할 때에, 이민옥도 그들을 따라가서 암암 리에 포군을 꾀어 풍기(豊基)에서 흩어지도록 유인하였다. 도군무(都軍務) 안승우가 제천 에서 군사를 수습하고 이를 영솔하여 이진하고자 할 때 이민옥이 또 간계를 쓰다가 발각 되었다. 안승우는 외척관계를 불구하고 이민옥을 참형에 처하였다. 이러한 맹영재와 이민 옥 등의 간계로 한때 의진은 곤경을 당하였으나 이춘영과 안승우가 다시 이를 수습하여 류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이춘영은 중군장이 되어 의진을 충주(忠州)로 옮겼 다. 그러나 1896년 2월 17일 충주성에 입성한 다음날부터 일본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충주성에서 머지않은 수안보에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있었을 뿐 아니라 관찰사 김규 식이 가흥(佳興)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군에 증원을 요청한 바 있어 의진이 입성하던 2월 17일 밤에 충주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충주 의진은 이튿날 아침부터 적군의 공격을 받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