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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특히 동년 7월의 제천 전투와 청풍 전투, 그리고 8월의 갈평 전투에서는 많은 왜적을 일거에 도살하고 생기충천(生氣衝天)하였다. 그 해 9월에는 제천 신림왕고개[神林枉峙]에서 매복 작전으로 수많은 적을 전멸시켰다. 이에 민심은 한층 고조되어 경상, 강원, 충청일대에 그의 전적(戰跡)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 후 1908년 6월 4일 의병장 이강년이 피체(被逮)되어 서울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으 로 순국하자, 그는 김상태를 찾아가서 재거의할 것을 도모하고 이승재(李承宰)·유시연·노 병대·이기하·이명재 등 여러 의병장들과 같이 의병을 취합하여 수차례에 걸쳐 왜적과 전 투를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이천, 장호원, 양근, 진천, 충주, 제천 등지를 전전하면서 왜적 제14연대 소 속 보병 2개 중대를 상대하여 전투를 벌이는 등 수십여 차례의 전투를 전개하여 수많은 왜적을 토벌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註ㆍ해동의사운강이강년선생약사(기념사업회) 16면 ㆍ문경군지(증보판, 간행년도 미상) 381후면 ㆍ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536면 ㆍ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305·731면 (8). 고정복 1. 약전(略傳) 성 명 (異名) 활동 시기 출 신 거주지 생, 몰 참고문헌및 전 거 활동내용 등 서훈및 포 상 * 고정복 高正卜 정미양평미상 〔양평사람들 p.271, 성역 화기본계획 p.92,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사 p.1026, 독립운동사 (1) 강상면 학곡리 출신. 김춘수의병진에서 활동, 1908년 3월 귀순했다가 이춘명, 신원영, 이천보 와 함께 다시 홍천. 양 평. 여주, 광주 등지에 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