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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의병장으로 경기도 남한산성에서 활동하였다. 일제가 1894년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거 하고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 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이승룡은 비분강개(悲憤慷慨)하며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1896년 초 경기도 양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입성하여 항전하다가 일본군의 꾀임에 빠져 남한산성을 나왔다가 피체되어 동년 음력 2월 14일 피살, 순국하 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註ㆍ昭義新編(柳麟錫, 1981년 국문간행본) 484面 ㆍ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15面 ㆍ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42面 ㆍ靑海李氏家史(1943) 下卷 ㆍ靑海李氏世譜 判官公派(1930) ㆍ楊平義兵運動史(楊平文化院 1996) 219∼222面 ㆍ楊平義鄕誌(楊平郡 2000) 558∼565面 4. 기타 이승룡가행장 <출처;『양평의병운동사』, 양평문화원, 장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