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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공훈록> 이두순은 강원도 회양(淮陽) 출신으로 1908년 민긍호 의진(閔肯鎬義陣)의 간부로 활동 하다가 민긍호가 순국한 뒤 독자적으로 의병진을 편성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한 뒤, 8월 6일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민긍 호가 봉기하였다. 특무정교 민긍호(閔肯鎬), 정위 김덕제(金悳濟), 손재규(孫在奎),한갑복 (韓甲福) 등이 진위대원 250명을 4개 부대로 편성하여 원주읍의 우편소(郵便所)와 군아 (郡衙), 그리고 경찰분서(警察分署)를 기습하고 원주를 장악하였다. 8월 12일 민긍호 의 진은 여주(驪州)를 기습하여 경무분견소를 공격한 뒤, 여주,이 천, 양근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8월 22일 민긍호는 이강년과 함께 충주(忠州)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9월 7일부터 12월 초까지 홍천, 낭천, 춘천, 횡성, 원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1908년 2월 28일 원주 강림(講林) 부근 궐덕리(蕨德里)에서 체포 되어 사살 순국하였다. 이두순은 민긍호 의진의 중요한 직책에 있었으나 민긍호가 순국한 뒤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편성하였다. 1908년 4월 29일 대장 이두순과 부장(副將) 김보삼(金甫三) 등이 거 느린 약 250명의 의병부대가 회양(淮陽) 백암산(白岩山) 부근에 주둔하고 있었다. 의병 250명 중에는 구한국 군인이 반수 이상이었다. 4월 30일 백암산 방목동(方目洞)에서 일 본군 회양수비대(淮陽守備隊)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註ㆍ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ㆍ國獨立運動史 資料11(國史編纂委員會, 1981) 義兵篇ⅳ 14면 (197). 이득길 1. 약전(略傳) 성명 (異名) 활동 시기 출 신 거주지 생, 몰 참고문헌 및 전 거 활동내용 등 서훈및 포 상 이득길 李得吉 정미양평미상〔김상기논문〕 옥천면 옥천리 1908 귀순 보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