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page

235 (3) 금계 이근원 선생 어록비 음기(陰記) 금계(錦溪) 이근원(李根元, 1840~1918) 선생은 성종대왕 11자 전성군(全城君)의 11대 손 으로 지평면 월산리에서 노가당(養翁)공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화서 이항로, 중암 김평묵, 성재 류중교 세 선생 문하에서 의암 류인석, 항와 류중악 선생과 동문 수학하셨다. 세 스 승의 도학과 의리정신을 계승하여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스승의 길을 따랐다. 선생은 반초대(反招臺)를 만들고 처이부지(處而扶持)의 의리로써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셨 다. 장담강회에 출입하시고 광탄강회를 주관하셨다. 1895년 신병으로 지평의병에 참여하진 못하셨지만 괴은 이춘영의 의병봉기에 영향을 주었으며, 군자금을 두어 차례 내셨다. 1905 년에는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순사(殉死)한분들의 충의를 기렸고, 을사오적의 죄를 극렬 토 죄(討罪)하셨다. 1906년 일진회의 무고로, 1910년 경술국치 때엔 소위 은사금(恩賜金) 거 절 등으로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가 고문을 당해 기절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하셨다. 금계선생은 화서선생을 계승하여 양평에서는 유일하게 후학을 양성한 학자로 주회암ㆍ 송우암ㆍ이화서ㆍ김중암ㆍ류성재 오현(五絃)의 영정을 모시고 삭망으로 절하며 정성껏 존경하고 사모하셨다. 또한 일직당(一直堂)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셨는데, 김상태 김태원 안승우 이규현 등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배출하시어 조국광복에 이바지하시다 79세로 별세하셨다. 문인 윤정학이 제문에서 “선생의 의리는 천지보다 높고 일월(日月)보다 빛난다고 말하 더라도 가늠할 것이다.”고 하였으니 여기에 선생의 평가는 모두 드러났다고 하겠다. 지평향교 전교 안승규..... 전주이씨전정군파평해군종회장 이해욱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