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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 공적조서 및 공훈록 <공적조서> 성 명강기동한 자姜基東 이 명姜基周 성 별 남 생년월일1884-03-05사망년월일1911-04-17 본 적경기도 장단주 소미상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1962 훈 격대통령장 공적개요 1. 長湍 高浪浦 헌병보조원으로 옥문을 열어 다수의 의병을 구출하였음 2. 1908년 의병장 李殷贊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吳壽泳, 姜元浩 등과 왜병을 토벌할 것을 죽음으로 맹서하고 여러 방면으로 격전하다가 포 천에서 체포되어 교사 <공훈록> 강기동(姜基東) 1884~1911 본명:강기주(姜基周) 강기동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였으며, 경기도 장단 고랑포(長湍 古浪浦)에서 헌병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1907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과 군대해산이 일제에 의 하여 단행되자 뜻있는 많은 인사들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고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의병들은 정규군인 관군과 일군에 의하여 속속 체포・사살 당하였다. 이때 강기동이 근무하던 장단에는 의병투쟁을 하다가 체포된 인물들이 다수 투옥되어 있었다. 그가 옥문을 열어주어 많은 의병들을 구출할 수 있 었으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의거의 기치를 내걸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의병 대장이 되어 각지의 의병장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었다. 강기동의 의진은 주로 양주(楊州)・ 포천(抱川)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일대 특히 경기도의 양주・포 천을 위시하여 삭녕(朔寧)・마전(麻田)・황해도의 토산(兎山)・금천(金川)・재령(載寧) 등지에서는 연기우(延基羽)・전성서(田聖瑞)・이한경(李漢京) 등이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강기동은 연기우의 의진과 서로 비밀 연락 아래 밀착된 전략을 전개하 였다. 연기우는 군인 출신 의병장으로서 군대 해산 직전 강화도 진위대(鎭衛隊)에서 봉기하여 가장 장기간 투쟁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들은 이미 현상금이 걸린 사람들 로서 밀정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대를 소수 정예부대로 편성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