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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공훈록> 윤성칠(尹星七) (1888)~미상 서울 사람이다. 조인환(曺仁煥)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 강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강제로「을사늑약(乙巳勒 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 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한국 식민지화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지의 뜻있는 애국지 사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갔다. 윤성칠은 이 같은 시기인 1907년 음력 7, 8월부터 11월까지 조인환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조인환 의병장은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의병을 규합하여 경기도 양평 (楊平)의 군아(軍衙)・세무서・우편물취급소 등을 파괴 방화하였고, 파주(坡州)・양주(楊 州) 지방에서 의병들을 이끌고 임진강을 근거지로 하여 수차례에 걸쳐 일본군을 습격하 는 등 활약이 매우 컸다. 당시 임진강 유역에는 조인환 부대외에 적성(積城) 출신의 왕 회종(王會鍾)・김진묵(金溱默)・권준(權俊) 등의 부대가 활발하게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 하고 있었다. 윤성칠은 이 같은 조인환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경기도 양근읍(楊根邑)・문어미(門魚味) 및 강원도 고성읍(高城邑) 등지에서 일본군에 대항하여 전후 3차례에 걸쳐 항일 무장투 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8년 9월 5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7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3卷, 國家報勳處, 1996年, pp.172~173. 註ㆍ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2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