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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순국선열 하사 안승우 선생 어록비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고 문명인이 야만인이 되는 것은 큰 변이요 큰 악이니, 천지(天地)에 용납되지 못할 일이다. 이 때문에 미약한 선비들이 자기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반역자는 누구나 잡아 죽일 수 있다’고 한 춘추대의(春秋大義)에 입각하여 세상에 의사(義士)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시대를 통탄하고 번쩍 일어나 크게 외치며 성패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국모의 원수는 토벌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임금의 욕됨은 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단기 4342년(서기2009)년 8월 15일 세움 : 상촌장학회 후원 : 순흥안씨동오공파종친회 월간선진한국⦁문화경제신문사 (3) 하사 안승우 선생 음기(陰記) 안승우(安承禹, 1865~1896) 선생의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 본관은 순흥(順 興)이니 지평의병 창의를 지도 후원한 퇴앙공의 첫째 아들이다. 양동면 출신으로 화서선 생의 제자인 성재 류중교, 금계 이근원, 의암 류인석 세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도학적 의리사상인 위정척사사상이 철저하셨다. 선생은 198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류인석 선생이 제 천 장담에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제의하였을 때에 거의소청(擧義掃淸)을 주장하셨다. 그리하여 죽기를 작정하고 이필회⦁이춘영⦁서상렬⦁김백선⦁김사정 여러 동지들과 함께 원주 안창에서 지평의병을 가장 먼저 창의하셨다. 제천에서 이춘영과 함께 이필회를 대장에 추대하고 군무도유사로 직무를 수행하고 다시 영월에서 동지들과 류인석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그 막하에서 전군장으로 충주 전투에 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춘영이 순국하자 그 후임으로 중군장에 임명되고 제천 남산성 전투에서 분투하다 순국(殉國)하시니 3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