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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명을 죽였으며 나머지 적은 동남쪽으로 도망쳐서 종적을 감추었음. 우리 측의 손해는 없 음. 기수 제2957호 / 한국 각지에서의 적의 상황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신일: 1907-11-16 수신일: 1907-11-16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호외의 1 메이지 40년 11월 16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의 요지 1. 10월 25일에 약 100명의 적이 우리의 평안(平安)[정선(旌善)과 영월(寧越)을 잇는 도 로상의 대략 중간에 위치함] 분견초(分遣哨)를 습격하였으나 우리 병사가 이들과 교전하 여 격퇴시켰음. 적의 사상자는 불명임. 정선(旌善)에서 그 동북쪽으로 약 1.5리에 있는 남 평리(南坪里)에 파견되어 있는 상등병 이하 6명의 척후는 10월 24일에 그곳 마을에서 한 국병 7명이 섞여 있는 약 60명의 적과 조우하여 이들을 궤란시키고 그 가운데 7명(이들 가운데 한국병이 2명임)을 죽이고 5명을 부상시킴(이상 보고가 연착됨). 2. 10월 26일에 원주(原州)수비대에서 병기를 정리하기 위해 횡성(橫城)으로 출장중인 소대는 지평(砥平) 서남쪽 곡수장(曲水場) 부근의 적을 토벌하기 위해 이천(利川) 및 여주 (驪州)에서 파견되어 있는 부대와 합동작전을 할 목적으로 횡성(橫城) 서쪽의 동성?? 부 근에 이르렀을 때 약 300명의 적과 충돌하여 이들을 궤란시키고 그 가운데 35명을 죽임. 동월 28일에 강릉(江陵)중대의 전령(傳令) 졸병 2명이 임계(臨溪) 부근에서 약 20명의 적 을 만나 우리의 병졸 1명이 부상을 당했음. 동월 30일에 충주(忠州) 청풍(淸風)가도상의 충주(忠州) 동쪽 약 3리에 있는 온실??에서 우리의 토벌소대는 약 300명의 적을 만나 그 가운데 16명을 죽임. 동 31일에 우리 소대는 삼척(三陟) 서쪽 3.5리의 지점에서 인원수 불명의 적과 만나 그 가운데 11명을 죽임. 동일 충주(忠州)와 평창(平昌) 사이의 전선 가 설작업을 엄호하는 소대는 충주(忠州) 제천(堤川) 가도상의 충주(忠州) 동북쪽 약 5리에 있는 복달령??에서 약 400명의 적을 만나 이들을 궤란시킴. 적의 사상자는 불명임. 3. 11월 2일에 평창(平昌) 북쪽 약 1.5리의 지점에서 우리 토벌대의 소위 이하 7명은 약 200명의 적과 충돌하여 그 가운데 13명을 죽임. 6일에 강릉(江陵)에서 파견되어 있는 소대는 양양(襄陽)에서 약 500명(이 가운데 한국병 이 6~70명)의 적을 공격하여 이들을 궤주시킴. 적의 사망자는 적어도 40명 이상임. 노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