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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 대는 28일 광탄(廣灘)에 도달하여 부근의 산중에 적이 있음을 탐지하고, 29일 밤 12시에 출발하여 30일에 그곳 북쪽 산중의 각지에서 약간 명의 적을 토벌하고 동일 광탄(廣灘)으 로 귀환함. 이날 만난 적의 숫자는 약 200명이며 그 가운데 100명을 죽였음. 우리 병사 의 부상자는 1명임. 또한 동 중대는 춘천(春川) 파견중대에서 양덕원(楊德院)에 파견한 소 대와 확실하게 연락을 취했음. 이 부근은 대체로 평온함. 또한 고안(高安)에 파견되어 있 던 중대에서 보낸 기병척후는 29일에 광탄(廣灘)에서 양근(楊根) 부근의 토벌대와 연락했 음. 3. 괴산(槐山)에 파견했던 중대는 오늘 오전 3시 30분에 괴산(槐山)에 도달하여 야영[露 營]중인 적을 기습하여 궤패(潰敗)시킴. 그 적은 약 300명으로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무기 와 탄약을 버리고 음성(陰城), 청주(淸州) 방면으로 도망하였음. 적의 사체는 발견된 것이 30구이며 우리 측의 사상자는 없음. 기수 제2372호 / 경성(京城) 부근의 폭도 토벌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 의 건 발신일: 1907-09-06 수신일: 1907-09-06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101호 메이지 40년 9월 6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9월 5일 오후 9시 40분 발전(發電) 동 6일 오전 1시 26분 착 경성(京城) 동남쪽 10리 내지 15리에 있는 양지(陽智) 및 양성(陽城) 부근에 적도가 집합 해 있다는 정보를 얻고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오늘 오전 10시 30분에 용산(龍山)에서 아 카시(赤司) 소좌가 인솔하는 보병 1개 중대를 동 방면으로 출발시켰음. 이전에 양근(楊根) 방면의 적도를 토벌하기 위해 보병 제52연대에서 파견했던 보병 1개 중대[아카시(明石) 중대]는 오늘 오후 2시에 경성(京城)으로 귀환함. 광주(廣州), 진양(眞陽), 보은(報恩) 방면의 적의 상황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신일: 1907-09-22 수신일: 1907-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