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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 지휘하는 2개 소대를 30일 오전 3시에 출발시켜 파견했음. 4. 장전점(長箭店)[강원도(江原道) 동해안, 거류 일본인이 약 70명 있음] 및 고성(高城) 방면의 폭도를 토벌하기 위해 원산(元山)에서 보병 1개 소대를 파견하도록 함. 5. 28일에 전선수리 작업을 호위하기 위해 파견했던 제13사단의 보병 1개 소대는 30일 오전 8시에 이천(利川) 남쪽에서 폭도 100여 명(총의 수는 약 50정)을 만나 이들을 토벌 중이라고 함. 6. 28일에 제13사단에서 양근(楊根) 방향으로 파견했던 보병중대는 팔당리(八堂里) 부근 에 있던 기병 장교척후와 함께 29일 이른 아침에 고안(高安)을 점령하고 양근(楊根) 부근 에 있는 토벌중대와 계속하여 연락을 시도하고 있음. 기수 제2329호 / 충주(忠州), 양근(楊根), 괴산(槐山) 방면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한 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신일: 1907-09-01 수신일: 1907-09-02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91호 메이지 40년 9월 1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31일 오후 9시 45분 발전(發電) 9월 1일 오전 3시 48분 착 1. 8월 17일에 경성(京城)을 출발하여 식량과 말먹이 호위를 위해 충주(忠州)로 향하던 보병 제51연대의 군조(軍曹) 이하 6명은 20일에 장호원(長湖院) 동남쪽 약 1.5리 지점에 있는 촌락에서 약 300명의 폭도에게 포위되었으나 이들을 격퇴하고 무사히 충주(忠州)에 도착했음. 또한 동 군조(軍曹)는 충주(忠州)에서 병졸 1명을 더해 7명을 이끌고 22일에 충주(忠州)를 출발하여 한강을 남하해 용산(龍山)에 이르는 배에 편승하여 귀경길에 나섰 는데, 23일에 여주(驪州) 하류 약 4리에 있는 이포(梨浦)부근에서 양쪽 연안으로부터 맹렬 한 사격을 받아 병졸 1명이 전사함. 분대는 즉시 이에 응전하고 이어서 오른쪽 연안에 상 륙하여 격투를 벌인 결과 그 가운데 10여 명을 죽였으나, 적은 더욱 더 그 수가 증가하였 으므로 혈로를 열고 24일에 여주(驪州)에 도착하여 그곳 수비대와 함께 재차 이전에 충돌 했던 지점에 이르렀으나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음. 그래서 수비대와 헤어져 26일에 경성 (京城)으로 돌아왔음. 2. 27일에 양근(楊根) 방면의 적도 소탕을 위해 파견되어 있던 보병 제52연대의 1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