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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집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정찰을 위해 귀천(貴川) 남쪽 도선장을 향해 전진하던 도중 대 안(對岸)에서 약 50총수(銃數)의 사격을 받고 이에 응전했으나 폭도가 더욱 증가할 기미 가 있다고 판단하여 오후 6시에 귀천(貴川)을 불태워 파괴시키고 팔당리(八堂里)[경성(京 城) 동쪽]로 귀환했음. 28일에 다시 전진하여 정찰을 실시한다고 함. 제13사단에서 28일에 중대장이 지휘하는 보병 약 100명을 경성(京城)에서 출발시켜 고 안(高安) 부근으로 파견하여 동지의 대안에 있는 폭도를 토벌하도록 함. 또한 광주(廣州) 부근의 폭도를 소탕하고 나아가 전신(電信)을 수리하는 인부[工夫]를 엄호하기 위해 28일 에 경성(京城)에서 출발하는 보병 1개 소대를 광주(廣州), 이천(利川) 방향으로 파견했음. 경상남도 함양(咸陽)진위대는 26일 오후 2시에 무사히 해산함. 기수 제2312호 / 한국 각지에서의 적도 정황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신일: 1907-08-30 수신일: 1907-08-31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88호 메이지 40년 8월 30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30일 오후 2시 35분 발전(發電) 동 일 동 7시 45분 착 1. 아다치(足達) 지대의 주력부대는 27일에, 삼척(三陟)에 상륙해 있던 보병중대는 28일 에 모두 영월(寧越)에 도착함. 또 시모바야시(下林) 지대에서 파견되어 있는 정찰중대는 26일 적의 감시초를 구축하고 영월(寧越)에 진입하여 27일에 원주(原州)로 귀환했음. 아다치(足達) 지대가 단양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23일에 50여 명의 적이 제천(堤川) 방향에서 와서 적도(賊徒)의 소집을 위해 왔다고 말하고 경상도 방면으로 사라졌다고 함. 2. 27일 오후 4시에 약 400명의 폭도가 봉기하여 순흥(順興)[단양(丹陽) 동쪽]의 순사분 견소(巡査分遣所)를 습격하여 순사보조원이 행방불명[行衛不明] 될 당시에 영천(榮川)[단 양(丹陽) 동쪽)] 부근에 있었던 보병 제14연대의 니시오카(西岡) 대위가 부하 35명으로써 이들을 토벌하였으며, 부하인 가와노(河野) 소위는 파견지인 진보(眞寶)[안동(安東) 동쪽] 에서 영천(榮川)으로 급행했음. 아다치(足達) 중좌는 연락을 위해 영월(寧越) 및 충주(忠 州)에서 각각 보병 1개 소대를 순흥(順興) 및 영천(榮川) 방향으로 파견할 것임. 3. 대전(大田) 수비대의 대장은 폭도가 옥천(沃川)을 습격한다는 보고를 듣고 중대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