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page

473 原州 폭도의 상황을 정찰하기 위해 당관에서 파견한 자의 보고에 의하면, 폭도는 砥平에 서 발단되었으며 그 거두도 역시 지평의 李春永(이춘영)이라 합니다. 이춘영은 단발령에 격앙하여 郡에 있는 砲軍(土兵을 말함) 수백 명을 규합하여 원주로 나아가 관찰부 청사와 군청을 습격하여 무기를 모두 약탈하였습니다. 폭도는 원주에서 3·4일 체류하였다가 이 달 18일 그 일부는 平昌을 지나 경상도로, 또 일부는 제천을 지나 경상도로 향하였습니 다. 이들이 안동의 폭도와 회합하려 한다고 합니다. 또 폭도가 공공연히 말하는 바에 따 르면, 충청·강원·전라·경상의 동지를 규합하여 경성에 이르러 단발령을 철회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친위대 1개 중대가 지난 22일 단양 부근에서 약 200명의 폭도와 충돌 했습니다. 적은 고지를 근거로 삼아 자못 맹렬히 방어하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격렬하게 싸운 후에 친위대는 일시 퇴각하였습니다. 제천을 지나 안동으로 향하고 있던 일부가 도 중에 충돌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본관은 지난 24일 그곳을 출발하여 원주·제천 등 각지를 우회하여 안동으로 가는 친위대 1개 중대는 이제 이 지방을 두루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고 생각되니 속히 安東 방면으로 전진하여 현재 추격중인 친위대 1개 중대와 연합하여 일거에 안동의 적 소굴의 소탕을 急務로 할 것을 당국에 권고하였습니다. (중략) 한국 각지 폭동 잡건 29년(1896) 4월 16일 재 경성 우치다 일등영사의 보고 이곳의 상황은 지난번 보고 후 계속 해서 평온합니다. 지방의 폭도도 남한산성에서 농성 하던 한 무리의 적도(賊徒)가 패하여 흩어진 후에는 그 기세가 갑자기 꺾여 혹은 여전히 양근(陽根, 楊根의 오기로 보임;편자 주) 지방에 집합했다고 하며 혹은 용인 지방을 배회 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원래 양식 등의 준비 없이 다수의 폭도가 오랫동안 집합할 리가 없으며, 특히 현재 바야흐로 농사 계절에 해당하므로 그들의 협박으로 인해 일시 어쩔 수 없이 좇았던 양민들은 모두 흩어져 돌아가 논과 들의 생업에 종사할 것입니다. 이로써 실 제 다수의 폭도가 여전히 한 곳에 집합한 것은 현재 전라도 나주 및 경상도, 함경도 지방 이며, 경기 지방은 우선 평온한 상황입니다. 동 5월 6일 재 부산 사카타[坂田] 영사관 사무대리의 보고 앞서 진주의 폭도 상황을 탐정하기 위해 파견한 한인의 시찰 일기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 니다. 이 사람은 지난달 22일 부산을 출발, 같은 날 김해에서 들은 소문으로는 진주에 둔 재하는 폭도 1천 명 중 500명은 김 대장이 이를 이끌고 의성으로 향했으며, 500명은 서 대장이 이를 이끌고 삼가(三嘉)를 향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동 23일 창원군 하관 시장 가 게에서 이 사람이 점심을 먹을 때 폭도의 탐정이라 칭하는 자 3명이 와서 거주와 성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