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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 외무대신西園寺(서원사공망) 1896년 1월 23일 오후 4시 25분 발 小村공사(소촌수태랑) 강원도 춘천부에 폭도가 봉기하여 관찰사와 경무관 등을 축출하고 관청을 빼앗았습니다. 이 폭도가 봉기한 원인은 단발령 때문인데, 정부가 신임관찰사의 부임에 맞춰 兵隊를 보 내 강제로 단발할 것이라는 망상을 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춘천부는 閔泳駿(민영준) 부자 가 거주하는 곳으로 그에게 딸려 있는 민씨 친족이 많이 있지만 폭도와 관계가 없고 오히 려 정부를 위해서 진압에 진력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민영준은 상경하여 金宏集(김굉집) 을 방문하여 칙유를 내려 해산하는 방법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그의 말을 받아들 여 신임관찰사를 급히 부임시켜 칙유할 예정으로 있는데 아마도 병력을 사용하지 않고 진 압할 듯합니다. 강원도 원주의 폭도는 과반수가 해산하고 그 일부인 대략 400명은 충청도 제천 쪽으로 향했습니다. 정부는 내일 1개 중대를 보내 원주·제천을 지나 충주 부근에서 전부터 충청도에서 示威 를 하기 위해 행군 중이던 1개 중대와 만나 경상도 안동방면에 있는 폭도의 세력을 살펴 정말로 그 세력이 치성할 때는 2개 중대를 합쳐서 안동으로 향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지 만, 그 중에 1개 중대는 안동까지 행군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번 각 지역에서 봉기 한 폭도는 물론 앞으로 이러한 폭도를 진압함에는 오로지 조선의 병력을 사용하는 외에는 일절 타국의 병력을 빌리지 않도록 본관이 간절히 조선정부에 권고하였습니다. 조선 당국 에서도 반드시 이 방침을 취할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오늘 金宏集(김굉집)이 공사관에 왔 기 때문에 단발령의 결과 정부는 강제로 단발을 강제하는 것 같고 자주 지방민에게 오해 를 주어 각지에서 폭도를 일으키게 한 것은 진실로 통탄을 금할 수 없으니 정부는 부디 이번에 칙유를 청하여 강제로 단발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동시에 내부대신은 지방관에게 훈령을 내어 단발의 여부는 각자 편의에 따르게 하여 지방민으로 하여금 가급적 오해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재의 급무라는 것을 권고하니 金宏集(김굉집)도 이에 동의 하였습니다. 아마 내일 중 칙유와 훈령을 모두 발표할 것입니다. 電受 제45호 (原州 폭도상황 보고) 동 오후 7시 착 외무대신西園寺(서원사공망) 1896년 1월 27일 오후 4시 발 小村공사(소촌수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