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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 (13). 「진중일기」 (발췌), 김하락〔F자료13〕 김하락 진중일기(발췌) (앞부분 생략) 나(김하락; 편자 주)는 이종제(姨從弟) 조성학(趙成學), 동지 구연영(具然英)·김태원(金泰 元)·신용희(申龍熙) 등 몇 사람과 더불어, 16일(양 1895. 12. 31.;편자 주) 이른 아침에 한 강을 건너 17일(양 1896. 1.1 .;편자 주)에 이천(利川)군에 들러 화포군(火砲軍) 도영장(都 領將) 방춘식(方春植)을 불러들여, 포군 명부를 가져다 놓고 포군 1백여 명을 징발하여, 여러 대로 나누어 우선 의병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게 하였다. 그래서 구연영은 2개대의 포군을 거느리고 양근(陽根)·지평(砥平) 두 고을로 떠나고, 조 성학은 2개대의 포군을 거느리고 광주(廣州)로 떠났으며, 김태원은 안성(安城)으로 떠나 고, 신용희는 음죽(陰竹)으로 떠났다. 이와 같이 나누어 맡겨 떠나보내고, 나는 이현(梨峴)에 있었다. 조성학은 광주산성에 들어가, 별패진(別牌陣) 군관(軍官) 김순삼(金順三)을 시켜 별패진 포군 3백여 명을 일으키게 하여, 김순삼·인준성(李俊性) 두 사람으로 통솔하게 하였고, 구 연영은 양근·지평으로 가서 군사 3백여 명을 일으켰으며, 신용희는 음죽·죽산(竹山)으로 가서 화포군 3백여 명을 일으켰고, 또한 포군으로 자원해 온 의병도 1백여 명이었는데, 본군 사람 심종우(沈鍾禹)로 하여금 통솔케 하였고, 김태원은 안성(安城)으로 들어갔는데, 그 고을에서는 이미 창의(倡義)를 하여 민승천(閔承天)이 대장이 되었으므로 서로 합세하 기로 하였다. (뒷부분 생략) <출처 : 『독립운동사자료집 』1 : 의병항쟁사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