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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 를 입수하기 위하여 군대를 찾아다니는 정치기자(政治記者)는 으레 이쪽의 정보를 상대 편에 알리지 않는 것이 도의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여기를 떠나서 의병의 병력 규모를 일 본군에게 말해 줄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알려 주기만 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내가 알고 있는 일본군의 전초 기지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 날은 밤새도록 의병들이 이 도시로 1명, 2명씩 찾아들었다. 일본군과의 접전에서 후 퇴를 했던 부상병들이 동료들에게 부축을 받아가며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몇 명의 의병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나를 찾아와 부상병을 치료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숙소 에서 나가 그들의 부상을 조사해 보았다. 한 부상병은 몸에 5발의 총탄을 맞았으면서도 표정은 조금도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기쁜 빛이었다. 다른 2사람은 1발의 총 탄을 맞긴 했지만 퍽 더 위험스러운 부상이었다. 나는 외과의가 아니므로 수렵용 칼로 총 알을 부상병의 몸에서 빼내는 수술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약 주머니에는 정제로 된 석탄산(石炭酸)이 남아 있어서 나는 이것을 물에 용해하여 상처가 곪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문질러 주었다. 마침 리스터 산이 있어서 상처를 동여맬 헝겊 조각을 소독하 여 그 깨끗한 헝겊을 상처에다 감아 주고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누워 있을 것이며 음식은 소량을 먹을 것 등을 지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동이 트자마자 의병 연대는 거리에서 시위를 했다. 그들도 대체로 전날 저녁에 나를 찾 아왔던 병사들처럼 보잘 것 없는 무기와 얼마 되지 않는 탄약밖에는 가지지 못하고 있었 다. 내가 그날 아침 출발하기 전에 그들은 먼저 몇 명을 전초들에게 보내어, 나는 영국인 이니까 발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미리 알렸다. 떠날 적에 나는 그들의 행운을 빌고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으나 혹시 우리 일행이 소유하고 있는 무기가 분실된 것이 없는 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내 하인들 중에는 의병들에게 우리의 무기를 주어 일본인 을 죽이게 하라고 나한테 간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강변의 돌이 많고 모래밭 평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하 인 중의 하나가 팔을 높이 쳐들면서 큰 소리로, “양대인(洋大人)”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일행은 걸음을 멈췄다. 나머지 하인들도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라고 물었더니, “의병 몇 명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일본인으로 생각하고 발사하려 합니 다.” 라고 김민근군이 대답했다. 나는 내 모습을 뚜렷이 내보이고 손가락으로 내 몸을 가리키 며, 그들에게 내가 일본인이 아니고 양대인(洋大人)이라고 하인들과 목을 돋우어 소리쳤 다. 좀 쑥스러운 행동이었지만 그럴 도리밖에 없었다. 그때 바위와 바위 사이를 슬금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