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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 ‘빵’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를 스쳐갔으며, 철판을 때리는 총탄의 소리가 뒤따라 들 려왔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려 그 쪽을 쳐다보았으나 총을 쏜 사람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내가 100야드 이상 떨어진 곳에서 380구경 콜트 권총으로 응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음 이 분명했다. 게다가 쫓아갈 시간의 여유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원주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일행은 그곳에 가면 의병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 다. 원주에 와 보니 사람들이 15∼20마일 더 가야만 의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그 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들은 양근(楊根)으로 가라고 했다. 어느 날 오후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말았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그날 아침에 서울 쪽 으로 15마일쯤 되는 어느 마을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전투에서 한국인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들어 알게 되었다. 양근에서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10여 채의 가옥의 지붕 위에는 적십자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한길에 있는 상점들은 방책(防柵)을 쳐 놓았고 십자 가가 문마다 붙어 있었다. 빨간 잉크로 엉성하게 그린 십자가는 그곳에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회장으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1주일 전에 몇 명의 일본 군인이 이곳에 와서 집을 몇 채 태워 버렸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 십자가가 붙어 있는 집은 태우지 않았다. 일본 군이 떠나자마자 동네 사람들은 자기 집에다 너도나도 문에 십자가를 붙였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양근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주민들은 대문 뒤에 숨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있더니 남자 어른과 아이들은 조용히 나와 나에게 접근해 왔다.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다. 여자들은 나를 피했다. 그날 오후 나는 어느 양반 집의 정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내 하인은 앞마당에서 저녁 식사를 짓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던 일을 중지하고 나 에게로 달려왔다. “선생님 의병들이 왔습니다. 여기 와 있습니다.” 그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잠시 후에 5~6명의 의병이 안뜰로 들어와 일렬로 내 앞에 서서 경례를 했다. 18살부터 26살까지의 청년들이었다. 잘생기고 영리하게 뵈는 한 청년은 아직도 정규 한국군의 제복 을 입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군대 작업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 중의 2명은 보잘 것 없는 낡은 한복 차림이었다. 누구도 군화를 신은 사람은 없었다. 허리에는 손으로 짠 광 목으로 만든 탄대(彈帶)를 차고 있었는데, 실탄은 반밖에 들어 있지 않았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머리에 터키 모자 비슷한 것을 쓰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헝겊조각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총을 눈여겨보았다. 6명이 5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다 낡은 것들이었다. 한 청년은 전장총으로 알려져 있는 아주 구식의 낡은 한국 사냥총 [火繩銃]을 자랑스럽게 들고 있었다. 팔에는 가늘고 긴 줄에다 도화선(導火線)으로 쓰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