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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의병을 만나다 한국군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제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내가 지나가기 이틀 전에 그들의 일부가 통과하면서 무기를 요구했다는 사실 을 알았다. 좀 더 가서 내가 도착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한국 의병과 일본군이 자칫하면 조우할 뻔했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촌락에 접근하자 주민들은 우거진 옥수수밭으로 뛰어 들어갔으며, 급기야 도착하고 보니 1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사람을 죽이고 방화를 자행하고 다니는 일본인으로 오인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짐 나르는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당나귀는 산악 지대를 다니면서 혹사했 기 때문에 피로의 빛을 보이고, 그렇다고 일본인이 모두 징발해 갔기 때문에 말과 당나귀 를 새로 빌린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주까지 가는 데 나는 짐 나르는 사람들에게 보통 품삯의 2배를 지불해야 했다. 원주에서부터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더 이상 가기를 아예 거절했다. “여기서부터는 여행 도중에 위험한 인물들을 만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악한들은 지나 가는 사람들을 누구나 할 것 없이 총을 쏘아댑니다. 더 이상 가는 것은 죽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 못 가겠습니다.” 하고 그들은 말했다. 나의 직속 하인들도 불안의 빛을 감추지 못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직속 하인으로 김민근군이 있었고, 짐 실은 당나귀 마부로 2사람 의 충실한 사람을 데리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원주 건너편 지대는 원주의 주민들이 나한테 말했듯이 매복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 었다. 길은 바위투성이고 고르지 못했으며 절벽이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계곡을 주로 통 과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분명히 옛날 화산으로부터 만들어진 장관의 산골짜기를 지나 가기도 했으며, 바위에서 금이 들어 있는 석영(石英)을 쪼아 내려고 잠간 멈추기도 했다. 이 지역은 조선의 유명한 금의 산지(産地)였다. 군대가 감쪽같이 숨어 있을 만한 지형이 었다. 땅거미지려고 할 무렵 우리는 여장을 풀려고 조그마한 마을에서 짐을 풀었다. 주민들은 침울했으며 불친절하였다. 다른 곳과는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딴 데서는 주민들이 전부 나와 나를 반겼고 때로는 숙박료도 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백인(白人)이 우리 마을에 오셨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퉁명스럽게 말에게 줄 꼴이나 쌀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 들은 15리 떨어져 있는 다른 마을로 가 보라고 권유했다. 우리 일행은 발길을 재촉하였다. 이 마을에서 얼마간 갔을 때 나는 우연히 옥수수밭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쳐다보게 되었다. 한 사람이 숲에 몸을 반쯤 숨기고 손에 뭔 가를 조작하고 있더니, 내가 돌아보니 숨겨 버렸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조그마한 낫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너무나 어두워서 분명하게 식별할 수가 없었다. 조금 있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