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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서양 사람이 우리가 당한 재난을 보러 온 데 대해 대단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사정을 당신 나라 국민들에게 알려 줄 것을 바랍니다.” 하고 그들은 말했다. “이 마을의 건너편 산에서 싸움이 좀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1~2마일 떨어져 있는 산을 가리켰다. “의병(지원군)이 저 산에 있으면서 몇 개의 전신주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들 의병은 동쪽 산악지대에서 내려왔고 우리 마을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군인이 와 서 의병들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의병은 후퇴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본군은 의병 이 후퇴하자 우리 마을과 다른 7개의 마을에 몰려왔습니다. 보십시오! 이 잿더미를 일본 군은 온갖 욕설을 다했습니다. ‘의병이 전신주를 파괴했는데 왜 못하게 하지 않았어!’ 일 본군은 이렇게 힐난하며 ‘그러니 너희들은 의병이나 꼭 같다. 보지도 못하는 눈은 있어서 뭘 하고, 의병들이 나쁜 일을 하는데 막지도 못하니 힘은 뒀다 뭘 하겠느냐? 의병이 너희 마을에 왔는데 너희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겠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우리 일본 군 인은 너희들을 처벌하겠다.’ 그러고는 그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질 렀습니다. 한 노인네가 젖먹이 어린애 때부터 살아온 자기 집을 일본 군인이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 군인에게 매달려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습니 다. ‘제발 내 집에 불을 지르지 마시오. 이 늙은 놈이 여생을 마칠 수 있게 그 집만은 그 대로 놔 주시오.’ 그 일본 군인은 노인을 자기 몸에서 떼어 버리려고 했으나 노인은 더욱 더 애원했습니다. ‘제발, 제발’ 노인은 신음하면서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그 일본 군인은 총을 들어 노인을 쏴 죽여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를 묻어 주었습니다. 또 산기(産氣)가 있 는 임산부가 자기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마침 그때 남편은 뜰에서 풀 을 베고 있었습니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일본군이 온 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풀을 베려고 낫을 쳐들자 햇빛을 반사하여 번쩍 빛났습니다. ‘저기 의병이 있구나’ 하면서 일본 군인은 총을 발사해서 그를 쏘아 죽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불타는 집에서 그의 족보(族 譜)가 불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달려 들어가 족보를 꺼내오려고 했습니다만, 일본 군인이 총을 발사해서 그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외모로 보아 일반 동네 사람들보다 높은 계급에 있는 듯이 보이는 남자 한 사람은 비통 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집을 다시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집은 양 반가문(兩班家門)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에겐 족보가 있었지요. 이제는 족보가 다 불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름도 없는 가문입니다. 쌍놈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시골로 들어갈수록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한국 사람은 자기의 가문과 족보를 이상하리 만큼 존경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족보란 중요한 것이다. 족보 가 없어지면 가족은 소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 가족 중에 생존하 는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충청도는 양반의 수가 많은 것을 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