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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하고 말하여 결국 그의 주인은 나와 동행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동행할 종의 문제는 해결이 된 셈이었다. 양식도 사들였고 말도 빌렸으며 안장도 점검을 끝마쳐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났었다. 일본 당국은 아무런 제재도 가할 눈치를 보이지 않았으나, 내가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출발을 할 때에 못 가게 할 심산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 행운의 소식이 왔다. 런던에서 전보가 1장 날아왔다. 그것은, “곧 시베리아로 가라.” 는 간단명료한 전보였다. 나의 원정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빌렸던 말도 돌려보내고 안장도 구석에다 처박아 버렸다. 나는 본국에다 곧 귀국하리라는 내용의 전보를 쳤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 게 이와 같은 변경을 알리면서 공적(公的)인, 사적(私的)인 불편을 털어놓았다. 나는 해운 회사를 찾아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는 다음 정기선을 알아보았다. 내가 남으로 떠나기 몇 시간 전, 한 다정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비밀이라도 되 듯이 이렇게 물었다. “정말 당신은 귀국하시는 겁니까? 혹시 귀국하신다는 것이 속임수는 아닙니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질문이 나에게 하나의 좋은 생각을 제시해 주 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이 트기 전 돌려보냈던 당나귀를 다시 되돌려 왔고, 하인들을 모이게 하여 안장을 정비하고 짐을 실은 후 곧 산악 지방으로 열심히 발길을 재 촉했다. 유감스러운 일은 본국에서 온 전보는 사전에 내가 하나의 눈가림으로 조작한 것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부정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의무상 나는 영국 총영사 대리에게 나의 출발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는데 내가 떠난 후에 야 전달이 되었다. 돌아와 보니 그의 답장이 와 있었다. ‘내륙지방의 불안한 사태 때문에 외국인이 이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당분간 중지하는 것 이 현명할 것이라는 요지의 전문을 총독으로부터 이달 7일 자로 받았다는 사실을 귀하에 게 알리는 것을 제 의무로 생각합니다. 또한 대영제국과 한국 사이에 맺은 조약(한영통상 수호조약) 제5조를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이에 의하면 여권 없이 내륙 지방을 여행하는 영국인은 체포되어 처벌을 받을 위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의병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곳에 나타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었 다. 일본 당국으로부터 조금씩 새어나오는 정보는 단편적이었으며, 당연한 일이지만 분명 히 일어나는 봉기를 과소평가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조작되었던 것이다. 한국 의용병들이 며칠 전에 경부선(京釜線)의 어느 조그마한 정거장을 파괴한 것은 그들도 시 인했다. 우리는 한 소집단 의병이 수도에서 20마일도 못 되는 곳에 있던 무기고를 습격하 여 일본 보초병을 몰아내고 무기와 탄약을 노획해 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대개의 경 우 싸움은 서울에서 4일간의 여행 거리인 충주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 서 내가 가려고 노린 곳도 그곳이었다. 나는 되도록 일본 군경(軍警)의 눈을 피하기 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