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page

453 서울에 있는 내 친구들은 백인(白人)이건 한국인이건, 이구동성으로 내가 여행을 떠나게 되면 영영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봉기가 일어난 이후 백인(白人) 중 에서 그 지역을 간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호랑이 사냥꾼들과 해산된 군 인들이 산중에 산재해 있으면서 일본인을 쏘아 죽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 본 군인과 지휘관들은 모두 양복을 입었기 때문에 그들이 원거리에서 나를 보게 되면 일 본인으로 착각하게 되어 발사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 하여 내 친구들은 여러 가지 방안을 내 놓았다. 나의 충복은 한국의 양반들처럼 보이게 가마를 타고 가라고 했다. 가마라는 것은 2사람 이나 4사람이 메고 다니는 상자와 같은 것으로 그 속에 탄 사람은 줄곧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타고 여행하면 1시간에 2마일 정도밖에 갈 수가 없다.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가마를 타고 여행하기는 싫었다. 한국 조정의 한 대신은 내가 어떤 마 을에 가려면 그 전날 저녁에 사령을 보내어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영국 신사라는 것을 알 려 안전하게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등, 그밖에도 여러 가지 제안이 많았 다. 운이 없으려니까 여행의 위험이 과장되어 퍼져 나가버렸다. 말을 빌려 주는 상인은 빌려 준 말을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돈을 요구해 왔다. 또한 나는 하인이 필요한데, 서울에는 많은 종이 있었지만 처음엔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냥과 채광 경험이 많은 ‘오(吳)’라는 체격이 좋고 젊은 하인을 쓰기로 했다. 그러 나 나는 그의 얼굴에서 매우 초조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약속한 지 3일이 지난 후 풀이 죽어 눈을 내려뜨고 나에게 와서 말했을 때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선생님, 저는 겁이 나서 못 가겠사오니 이번만은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뭐가 무섭단 말이오?” 나는 반문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선생님을 보면 총을 쏠 것은 물론이고, 내 머리가 짧으니 나도 쏴 죽 일 것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의병들은 상투를 틀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오(吳)는 퇴짜를 놓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역시 굉장한 사냥 경력을 갖고 있는 ‘한(韓)’이라는 하인을 추천했으나 내가 여행할 목적지를 듣더니 곧 거절해 버렸다. 좀 떨어진 곳에 ‘신’이라는 사나이가 하나 있었는데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더니 죄송하 다는 말과 함께 거절해 왔다. 전쟁 때의 옛 하인이었던 김민근이란 사람은 나와 동행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의 몸종이었으므로 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했다는 말을 듣고 경멸어린 어조로, “영감마님, 이 사람은 겁이 상당히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