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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12).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 매켄지(F. A McKENZIE)〔F자료12〕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 매켄지(F. A Mckenzie) 영국 『데일리 메일』 극동특파원 한국의 황제(고종)는 폐위되고 군대는 해산되었다. 서울 시민들은 침통하고 분노에 차 있었으나 별 도리 없었다. 조상들의 무관심과 태만, 그리고 어리석은 희생물이 되어 버린 그들은 조국을 빼앗기는 꼴을 보고도 감히 한 마디 반항도 하지 못했다. 기고만장한 일본 군인들은 서울의 성문(城門)과 대궐 안에 보초를 섰다. 왕족들은 심지어 머리를 깎아야 한다, 의복을 개량하여야 한다, 등등 사소한 점까지 일본인의 요구대로 따라야 했다. 장곡 천(長谷川) 장군의 군대가 서울 거리를 통제했으며, 백의(白衣)의 한국 민족은 기를 펴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수도인 서울은 일본군에 의해 위압되어 있었지만 어떤 지방에서는 그렇지도 않았 다. 어둠을 타서 몰래 성벽을 넘어 서울에 들어온 먼 지방 피난민들을 통하여, 각지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들의 말로는 지방에서는 잇달아 일본군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의병이 조직되었는데 그들의 공적은 대 단한 것으로, 이들의 공격으로 일본의 파견대는 여지없이 섬멸 구축(驅逐)되고 있다는 소 식이 전해졌다. 때때로 일본군이 승리를 거두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이럴 때면 일본군은 한 마을 전체를 파괴하고 양민들을 무차별 살육함으로써 끔찍스러운 보복을 가했다는 말 도 들렸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나로서도 상당한 회의를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인의 난폭한 행위를 잘 알고 있는 터이었지만, 이러한 불법 무도한 행 위가 지휘관의 명령 하에 있는 일본 군인들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행해졌으리라고는 생각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노·일 전쟁 때 일본군에 종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본 군인들의 자제력과 군기(軍紀)가 훌륭한 데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물건을 훔친다거 나 난폭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에 서울에서의 봉기를 진압하던 일본 군대의 행위를 목격했던 만큼 그런 소문에 대해서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 피난 민들의 얘기가 옳든 그르든 간에 분명히 심상치 않은 싸움이 일본군과 의병 간에 벌어지 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9월 초순에는 부산 근방의 동부 지역에서부터 서울의 북부에 이르기까지 접전지역(接戰 地域)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의병은 주로 해산 당한 관군(官軍)과 산악 지대의 사냥꾼들로 조직된 것 같았다. 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