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page

441 (光陵寺)에 약 1백 명의 폭도 집단이 있음을 탐지하고 급행하여 습격하고 말 1필, 총 1 정, 화약 약간 및 잡품(雜品) 몇 점을 노획하였다. 우리 편에 사상자가 없으나 적의 사상자는 확실치 않다. (18) 융희 원년 10월 11일. 안산군(安山郡) 북방면(北方面) 속달리(速達里)에서 경찰대는 그곳 수비대와 함께 폭도 19명을 공격하여 적 5명을 죽이고 총기 탄약 19점을 노획하였다. (19) 융희 원년 10월 25일. 장단군(長湍郡) 진동면(津東面) 하포리(下浦里) 조동일(趙東一) 방에 폭도 수명이 내습하 여 2백 원(圓)을 약탈하여 갔다. (20) 융희 원년 10월 30일. 경찰관·수비대 약 20명이 광주군 돌마면(突馬面) 독점(獨店)에 내습하였음을 탐지하고 이 를 급습하였다. 적은 시체 1, 화승총 5정을 유기하고 산중으로 궤주하였다. (21) 융희 원년 11월 14일. 폭도 수십 명이 고양(高陽) 순사 분파소를 습격하여 기구를 파괴하고 또 순검 이희관(李 熙寬)의 가택에 도착하여 금품을 약탈하여 갔다. (22) 융희 원년 11월 14일. 양주군(楊州郡) 시북면(柴北面) 고동(高洞)에 약 1백30명의 폭도가 내습하여 동민을 협박 하고 금품을 약탈중임을 탐지하고 보조원 전(畑爲治)은 역시 보조원 송본(松本益治)·하야 (河野通規)·신미(新美源一郞)·유마(有馬靜治)·영례(永禮一七)·장강(長岡荒吉)·중곡(中谷伊助) 및 순검 김학현(金學鉉)·최재성(崔在成)·배시혁(裵始爀)의 10명과 함께 그곳 헌병대와 협동 하여 목적지에 급행한 바, 그날 오후 5시 고동으로부터 약 2백 미터 지점에 도달하였을 때 동내 각처에서 연기가 솟아올라 원주민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심히 불온한 상태였 으므로 일동은 더욱 경계하면서 진행중, 돌연히 오른편 산 송림 속에서 폭도의 저격이 있 어 이에 응전, 수 시간에 걸쳤으나 적은 완강히 저항하여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형적으로 추격하는 데 불리하므로 추격을 보류하고 그날 밤 부근 산마루에 노 영(露營)하면서 정찰한 바, 적도(賊徒)는 고동(高洞)의 동쪽 약 10리의 장흥면(長興面) 석 현리(石峴里)에 집합하려는 것을 탐지하고 새벽에 맹렬한 습격을 한 결과 적도는 불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