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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인식하고 경기방어사 변응성(邊應星)의 통솔 아래 승군을 용진에 보내어 훈련하고 군량미 를 비축하기 위하여 농사도 짓고 양평, 여주, 이천 방면의 도적단을 토벌하니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선조 28년 6월 용진(龍津:현 양수리) 영책(營柵)을 잘 수리하고 월계산성(月溪山城;부용산 성;편자 주)을 새로 수축하여 보강키로 하고 총섭승 견우(見牛)를 그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선조 28년 3월 파사산성(婆娑山城)을 다시 쌓기로 하고 의엄(義嚴)을 도총섭으로 하고 이를 담당케 하였다. 다시 올지 모르는 왜군을 방어하기 위하여 수축한 것인데 수도방어 에 매우 중요하여 영의정 유성룡이 직접 순시하여 독려하였다. 남언경이 임진왜란 때 의 병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양근군(楊根郡)에서 싸웠을 것이다. 〔F자료壬5:구미포나루표석〕 <구미포나루터 표석> (표석 내용) 곳 : 양평군 개군면 구미리 양평군과 여주군을 잇는 남한강의 중요한 한 나루터로서 선조 25(1592)년 임진왜란 때 강원도 조방장(防禦伺) 원호(元豪) 장군이 향병(鄕兵, 의병을 의미;편자 주)을 모아 왜군을 기습하여 50여 명을 치고 왜장도 베어 이기며 양평 백성을 보호했던 향군이 승전한 나루 터이다. 〔F자료壬6:원호장군임진전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