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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5) 융희 원년 8월 22일 오전 10시. 수괴 임옥여(任玉汝)의 부하 약 20명이 이천 읍내를 습격하여 우편 취급소 및 때마침 출 장 부재중의 순사분파소를 파괴하고 순사의 의류, 기타 도구를 약탈하여 돌아갔다. (6) 융희 원년 8월 30일 오전 8시. 전선(電線) 수리를 위하여 이천(利川)에 출장 중인 중촌(中村) 소대장 이하 병졸 50명은 수괴(首魁) 불명의 폭도 50명과 충돌, 교전 3시간 만에 이를 격퇴시켰다. 이 전투에서 적의 사망자는 8명이며 우리 편의 사상자는 없다. (7) 융희 원년 9월 5일. 양주군 야면(夜面) 누원(樓院)에서 광주군 방면으로부터 내습한 약 3백 명의 폭도는 경 성·의정부 간의 우편물 체송인 및 호위병 1명을 참살하며 전선을 절단하고 가평군 방면으 로 향하였다. (8) 융희 원년 9월 8일. 적성(積城) 순사분파소에 10여 명의 폭도가 내습하여 순검의 대검(帶劍) 하복(夏服) 4벌 을 빼앗아갔다. (9) 융희 2년 9월 14일 오전 7시. 보좌관보(補佐官補) 주본용사량(酒本勇四郞) 이하 순사 8명은 정찰을 강행하던 중 죽산 군 백암시장(白岩市場)에 모인 약 2백50명의 적도를 발견하고 돌격하자 사체(死體) 3구를 유기하고 퇴각하였다. 우리 편의 손해는 없었다. (10) 융희 원년 9월 19일 오전 3시. 수괴(首魁) 불명의 폭도 4백여 명이 장호원(長湖院)수비대를 습격하여 약 1시간 교전 후 퇴각하였다. 피차간에 사상자 없었다. (11) 융희 원년 9월 20일 오전 3시. 포천군 외면(外面) 상송(上松)에 폭도 약 1백 명이 내습하여 동민(洞民) 1명을 총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일진회원(一進會員) 1명을 납치하였다는 급보에 접하고, 포천 주 재 순검 신석주(申錫柱)는 그곳 수비병과 함께 추격하였으나 마침내 양주군 삼가대(三佳 垈) 방면으로 도주한 적을 놓쳐버렸다.